[여적]K푸드 김밥
김밥은 한때 짜장면 같은 추억의 음식이었다. 소풍날이면, 김밥을 툭툭 말아놓는 어머니 옆에서 속 재료가 삐져나온 김밥 꼬투리에 저절로 손이 가곤 했다. 맛도 맛이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더해져 한층 맛있게 느껴졌을 게다. 누군가의 ‘솔푸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특별한 날 먹던 김밥 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 중반, 김밥 체인점들이 생기면서다. 김밥 체인점의 대명사인 ‘김밥천국’은 중국산 찐쌀로 만든 1000원짜리 김밥을 내놓았다. 저렴한 비용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어 인기를 끌었고, 비슷한 저가 김밥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랬던 김밥은 ‘분식’에서 속 재료를 기호대로 넣어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한 ‘요리’로 또 한번 진화한다. 프리미엄 김밥 브랜드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고급 김밥 시대를 여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냉동 김밥이 인기라고 한다. 요즘 미국에선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냉동 김밥을 구하느라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부터 한국산 냉동 김밥을 직수입해 파는 식품점 체인 ‘트레이더 조’에선 각 지점마다 물량이 동났다. 경북 구미 중소 식품업체가 납품한 이 냉동 김밥의 제품명은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딴 ‘KIMBAP’이다. 김밥이 미 전역에서 매진을 일으킨 데에는 한국계 음식 블로거인 사라 안이 지난달 16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김밥 먹방’ 영상의 영향이 컸다. 품귀 사태를 빚은 냉동 김밥은 다음달 미국 땅에 추가 입고될 거라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김밥이 포함된 쌀가공식품 수출액이 올해 16.2%나 증가했다. 전남 신안에서는 오는 20~23일 김밥축제도 열린다. 흑산홍어돌미역김밥, 신의개펄낙지김밥, 신안팔금면고사리회오리김밥 등 이름도 다양하다.
한국인이라면 느닷없는 냉동 김밥 열풍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스시’로 불리며 굴욕을 당했던 김밥이 제 이름을 찾았다니 반가운 일이다. 김밥을 싸가서 조롱당한 기억이 있는 이민자들도 샌드위치 대신 당당히 도시락으로 가져갈 시대가 된 것 아닌가. NBC도 김밥 인기를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의 인기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니 왠지 뿌듯하다. 김밥 인기를 이어받을 다음 ‘K’ 시리즈는 무엇일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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