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 기부했지만 2만원 시계 차던 ‘면세점 대부’… DFS 창립자 별세
공항 면세점을 운영한 돈으로 80억달러(10조7120억원) 넘게 기부했지만, 정작 그는 평생 15달러(2만원)짜리 시계 하나만 차고 다녔다.
큰 부를 이뤘지만 한없이 검소했던 기부왕.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세계 최대 글로벌 면세점 업체 DFS를 창립한 찰스 척 피니가 지난 9일(현지 시각) 92세의 나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거부(巨富)의 마지막 순간은 조촐했다. 그가 아내와 함께 머물던 샌프란시스코의 집은 방 두 칸짜리 소형 임대 아파트였다. 평생 수십억 달러의 돈을 벌었지만, 그는 노후 생활과 5명의 자녀를 위해 200만달러(26억8000만원)를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모두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를 통해 대학·병원·미술관·도서관 등에 기부했다. 익명이나 가명을 써 기부받은 1000여 개 기관이나 단체들은 기부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기부가 반복되면서 피니라는 사실이 차츰 알려졌다.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니는 1931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험설계사,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매달 주택담보대출 이자 32달러를 제때 내기도 쉽지 않은 집이었다. 어릴 땐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캐디를 했고, 대학 다닐 땐 친구들에게 샌드위치를 팔며 등록금을 벌었다.
1956년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같은 학교 졸업생인 로버트 밀러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에게 술·향수 같은 면세품 파는 일을 시작했다. 전쟁 직후 해외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면세품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피니와 밀러가 세운 면세점(Duty Free Shoppers·DFS)은 유럽·아시아·미주 전역 공항과 주요 도시에 매장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고, 피니는 억만장자가 됐다. 기술 스타트업에도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돈을 벌수록 피니는 자신이 호화로운 삶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리무진을 팔고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타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고집했다. 집과 자동차는 수십년간 사지 않았다. 손목엔 15달러짜리 시계만 차고 다녔다.
1982년 자선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1997년 자신의 DFS 지분을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에 넘기고 받은 16억달러(2조1472억원)도 모두 자선 재단에 기부했다. 피니를 두고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살아있는 동안 베푼 최고의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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