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꺼낸 이란의 하마스 배후설…한국에 '불똥' 왜? [와이즈픽]
공화당 대선 주자들 "바이든 정부가 이란을 지원한 셈" 맹공
이번엔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 간의 또 다른 전쟁. 중동 전체로의 확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인데 이럴 때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내년 미 대선의 '상수'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3월 '슈퍼 화요일' 공화당 경선을 앞두고 유세에 한창인 그는 이번 이슈를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정말 약한 지도자 탓에 미국이 약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며 경쟁자인 바이든 현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러면서 미국은 억류자 석방을 대가로 이란에 60억 달러를 지급했다고도 언급했다. 우리 돈 8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다.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고 이란의 지원 주장은 60억 달러 지급이 있어 가능했다는 논리다.
또 다른 대선 주자인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뛰어들었다. 그는 SNS에 "이란에 유화적인 바이든의 정책이 그들의 금고를 채워줬다"고 썼다. 공화당 대선 주자 여론 조사에서 1·2위를 달리는 두 유력 후보 모두 이번 공격을 가능케 한 건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자금은 도대체 무엇일까?
건네진 자금은 한국의 이란 원유 대금 8조 원
트럼프가 언급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수감자 교환이 이뤄진 건 지난달(9월) 중순. 이란에서 풀려난 미국인 5명이 비행기를 타고 이란 수도 테헤란을 벗어났고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 석방된 이란인 2명도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카타르의 중재로 이뤄진 수감자, 즉 인질 교환이다.
이 수감자 교환의 조건이 바로 한국에 묶여 있던 막대한 규모의 이란 자금이었다. 4년여 만에 이란에 건네진 것이다. 이 자금은 스위스를 거쳐 카타르로 송금되도록 설계됐다. 우회 지급 방식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는 2019년 5월 이후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원유 수입 대금 60억 달러가량이 예치돼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이란은 지속해서 이 자금을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런데 미국이 완강히 버티면서 송금할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제재로 묶인 이란 원유 자금은 4년 이상 우리나라 은행 2곳에 묶여 있었다.
이 자금을 묶은 건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지난 2018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이란핵합의(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란핵합의는 이란이 보유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수량과 성능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5년 미국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이란이 합의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합의를 깨면서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렸고 우리나라 은행 계좌도 2019년 5월에 동결됐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이란은 이란핵합의 복원 협상을 벌였고, 이란은 한국뿐 아니라 이라크에 동결돼 있던 자금 해제까지 요구했다. 수감자 맞교환의 조건으로 이란에 원유 자금이 건네질 수 있었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묶은 자금이 이란에 건네지면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미국 전직 대통령의 주장이다.
바이든 "이득을 노릴 때가 아니다" 발끈
바이든 대통령은 발끈했다. 그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지금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누구든 이번 공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할 때가 아니라며 세계가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모든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직전 메시지에 이어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한 언급이다. 전쟁도 중요하지만, 내년 대선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의 포로 교환으로 동결 해제된 자금 60억 달러 가운데 이란은 아직 1달러도 지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이 파악한 바로는 카타르에 도착한 이란 원유 대금은 하나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직접 사용이 아닌 우회 사용은 확인할 수 없다. 참고로 2017년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와 단교 사태를 맞았던 카타르는 이란과 외교 관계를 회복할 정도로 가깝다.
우리가 건넨 이란 자금 정말 공격에 사용됐을까?
이와 관련된 이란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주유엔 이란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확고히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이번 대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이 취한 단호한 조치는 불법 시온주의 정권이 저지른 지난 70년간의 억압적인 점령과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완전히 합법적인 방어를 의미한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일단 미국은 이란 자금의 용처를 모두 확인할 수 있고 인도적 목적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번 공격 전에 눈에 띄는 외신 기사 하나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지난달 말 영국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활동했던 한 미국 전직 스파이는 "이란에 건네진 자금이 이란의 군사적 프로그램에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역 정보에 근거한 것인데 이는 미국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 입장은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에 직접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CNN은 여러 미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수년 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지해왔지만, 이란이 이번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보도했다. '스모킹 건' 즉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다는 의미다.
증거는 불확실하지만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란 배후설 그리고 한국이 건넨 이란 원유 자금이 13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 주요 정쟁 거리가 될 가능성은 점점 확실해 지고 있다. 미국 대선판에 우리나라의 '지극히' 당연한 이란 자금 지급 사안이 오르내리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원유를 사고 이란에 지급해야 할 돈을 건넸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 인질 교환의 조건이었다는 게 논란이었다. 우리나라에 묶인 자금은 이란이 제재로 못 받는 자금 가운데 비교적 큰 규모이다. 미국이 이 카드를 쓴 것이다. 미국으로선 자기네 세금 한 푼도 안 쓰고 우리 돈으로 인질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또 다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 중심 이슈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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