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착륙 때 기업이 피해야 할 '해고 통지'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10. 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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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4개월 연속 불황형 흑자
8월 수출 6.5%↓ 수입 21.0%↓
IMF, 한국 내년 성장률 또 하향
침체기 해고 줄이고 R&D 늘려야

불황형 흑자가 4개월째 이어지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또다시 하향 조정하면서 한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이같은 경기침체기에 기업들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경제매체 포춘은 지난 2월 해고의 숨은 비용이 15만8000~19만1000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 기업 생존의 원칙=경상수지가 8월에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불황형 흑자가 4개월째 이어졌다.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8월 경상수지는 48억1000만 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수출은 537억5999만 달러로 1년 전보다 6.5% 줄었는데, 수입은 486억8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1.0%나 감소했다.

내년 성장세에도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또 낮췄다. IMF는 올해 1월 세계 경제전망에서 우리의 내년 경제성장을 2.6%로 전망했지만, 4월에 2.4%로 0.2%포인트 내리고, 10월에도 2.2%로 다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지난해 7월 이후 5차례 연속으로 하향 조정했고, 이번에는 종전과 같은 1.4%를 유지했다. 올해 선진국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1.5%보다도 낮은 수치다.

최근 고환율, 고금리, 고유가의 3고高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윤석열 대통령도 10일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대외의존도가 가장 높다"고 말한 데 이어 11일 오후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불안함도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는 기업엔 생존의 문제여서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기에 기업은 부채를 감축하고, 비용 지출을 줄여서 현금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컨설팅회사 맥킨지에서 기업 위기 대응을 책임지고 있는 미하르 마이소어 컨설턴트는 "기업의 부채 축소는 경기침체가 확실해지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위기가 시작됐는데 부채 축소에 나서면 현금흐름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베카 헨더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경기침체는 매출 감소로 이어져 운영자금을 위한 현금을 고갈시킨다"며 "회사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 불황의 경제학➊ 해고의 역풍=란제이 굴라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게재한 '경기침체에서 살아나 번영하는 방법'이란 기고문에서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강하게 성장하려는 기업은 경기침체 중에 해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 성과급 축소, 무급휴가 등을 먼저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굴라티 교수가 2010년 미국 경기침체기인 1980년, 1990년, 2000년 상장사 4700개를 조사한 결과, 17.0%의 기업이 경기침체 기간 팔리거나 비상장사로 전환했다. 경기침체를 겪고 3년 내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최소 10% 이상 증가한 기업은 9.0%에 불과했다.

굴라티 교수는 소니의 예를 들었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2008년 4분기 -6.8%를 기록하자 소니는 전 세계 사업장에서 1만6000명을 해고하고, 26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소니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소니는 인력감축과 사업축소 후유증으로 이후 5년 이상 장기침체에 빠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9년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 보고서를 분석해 한국의 법적 해고비용이 근로자 한명당 평균 27.4주치 임금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6곳 중에서 튀르키예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고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법적 해고비용은 0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경기침체가 단기간으로 예상되면 해고를 회피하려고 노력한다. 경쟁력이 높은 기업일수록 신규 직원의 고용과 교육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매체 포춘은 지난 2월 "기업이 근로자 한 명을 해고하는 숨은 비용은 15만8000~19만1000달러"라고 보도했다.

■ 불황의 경제학➋ R&D 늘릴 적기=우리나라 R&D 예산은 2018~2023년 연평균 10.9% 증가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R&D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나 삭감한 25조9152억원으로 책정했다.

우리 기업들의 R&D 투자는 세계적으로도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평균 3.5%로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 R&D 현황 분석 및 성과 제고 방안'에 따르면 세계 R&D 상위 2500개 기업 중에서 한국은 53개로 2013년 80개에서 33.8%나 줄었다. 우리 정부의 지난해 중소기업 R&D 세제 지원율은 0.26%, 대기업 세제 지원율은 0.02%로 각각 OECD 36개 나라 중에서 15위, 31위였다.

이렇게 적은 세액공제 혜택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반도체 분야에 몰려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최근 6년간 '국가 전략기술'과 '신성장·원천기술(원천기술)' 분야에 투자한 금액 중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 정부에 신청한 투자액은 약 27조9000억원인데, 이중 반도체가 16조8000억원을 차지했다.

애플은 닷컴버블 붕괴 당시 R&D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하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사진=뉴시스]

프린스턴대 노사관계 리서치센터의 브래드 허쉬바인 연구원은 2018년 논문에서 2007~2015년 게재된 온라인 구인 게시물 1억개 이상을 분석해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입은 도시일수록 컴퓨터 관련 기술 등 첨단기술 수요가 높았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임금이 높은 고급 기술인력을 해고한 뒤 다시 고용하려는 수요가 높아지면 비용도 증가한다. 그래서 경기침체기에 R&D 투자를 늘리는 것은 경기가 좋을 때보다 가성비가 좋을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R&D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에 경기침체는 기회일 수 있다. 애플은 닷컴버블이 붕괴되자 매출 대비 R&D 비중을 2000년 4.76%에서 2001년 8.02%로 끌어올렸다.

포브스는 2020년 5월 '불황에 R&D 투자를 줄이면 안 되는 이유'란 기사에서 "애플이 불황에 오히려 R&D 투자를 늘린 결과 2003년 아이팟과 아이튠즈, 2007년 아이폰 출시로 불황을 탈출했다"고 분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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