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반성하는 독일’ 된 비결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베를린편②]
과거엔 역사에 대한 기억이 양극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
건물 완성하거나 디지털 복원도 경계
‘소수 희생해 다수 행복’이 나치 논리
언제든 다시 독일 사회에 번질 수 있어
[헤럴드경제(베를린)=김빛나·박혜원 기자] 독일 수도 베를린은 ‘속죄의 도시’라 불릴 만큼 다양한 기념관이 모여 있다.
베를린 중심인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가해자의 장소인 나치 유적과 피해자를 위한 장소인 유대인 학살 추모관이 함께 서 있다.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 본부가 있었던 ‘테러의 지형학’에서 남쪽으로 1㎞ 떨어진 곳에는 유대인 박물관이, 북쪽으로 1㎞ 떨어진 곳에는 유대인 대학살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다. 전범의 과거를 드러내고, 전범 피해자를 기념하는 현재 독일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속죄의 장소’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반세기가 흐른 2000년도 이후에 완성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21일 방문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2005년 종전 60주년을 맞아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높낮이가 다른 콘크리트 조각 2700개로 구성됐다. 이 콘크리트 조각들은 무덤을 상징한다. ‘테러의 지형학’은 2010년에 신축 기록관이 문을 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독일도 한때 과거사에 침묵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던 1950년대부터 1960년대 경제성장기 독일은 나치 역사의 반성에 소극적인 나라였다.
“독일은 2000년도 전까지는 역사에 대한 기억이 양극화됐다. 보수당은 역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했고, 진보당은 과거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지난달 20일 만난 ‘기억·책임 그리고 미래재단(EVZ·이하 기억재단)’의 지원활동부문장 랄프 포세켈 박사는 2000년 전후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포세켈 박사가 소속된 기억재단도 2000년에 설립됐다. 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가 생각한 독일 사회의 반전 계기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68혁명 세대로 불리는 당시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다. 전쟁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부모 세대에게 나치 시대를 반성할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는 협치다. 68혁명 세대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보수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전범의 역사를 드러내자는 정당 간 합치가 이뤄졌다.
사회 분위기가 반전되자 반전(反戰)의 분위기도 형성됐다. 나치 유적에 대한 논의도 이때 이뤄졌다. 포세켈 박사는 “나치 수뇌부가 사용했던 ‘테러의 지형학’은 역사적 증거다. 역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그곳에서 이뤄졌다”며 “중요한 건 이 증거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 자체를 보여줘야 한다. 일부 유적의 경우 디지털 복원으로 완성된 모습조차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복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포세켈 박사는 “물론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복원된 장소라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독일 사회에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뜻이다. 현재 독일 시민에게 경고하는 용도로 역사의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세켈 박사는 나치 유적이 2023년을 살아가는 독일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나치당의 주요 논리는 ‘소수를 희생하면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였다. 나치는 유대인을 희생 대상으로 정했다. 당시 독일인들은 나치를 지지했고, ‘대청소’라는 발상으로 유대인을 한꺼번에 수용소에 가두고 죽이는 대학살을 자행했다. 독일인에게 나치 유적은 어두운 과거의 흔적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게 독일의 ‘기억 정치’”라고 말했다.
“한국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그는 한국에 남아 있는 근현대사 유적에 대해 “사실 한국의 상황을 전부 다 알지 못하고 또 한국은 독일과 다른 입장일 수 있어 쉽게 제안을 못한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다. 독일은 유적을 보존한다.”
물론 독일에 나치 역사를 기억하자는 움직임만 있는 건 아니다.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최근 지지율이 20%까지 치솟으면서 “반성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포세켈 박사는 “현재 독일을 위한 대안도 배상 등 독일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면서도 “현재는 역사의 오점이지만 넘어가자는 주장만 하고 있는데 책임이 없다는 주장까지 하면 의회에서 각종 이슈가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 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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