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울리는 늑장공시 안돼"… 美 5%룰 50년만에 손본다
경영권 영향 5%이상 취득시
공시의무 시한 10일서 5일로
기업사냥 헤지펀드도 정조준
트위터 인수 집단소송 당한
머스크는 제재 해당 안될듯
내년 말부터 미국에서 경영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5% 이상 지분'을 확보한 헤지펀드의 공시 기한이 확 줄어든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존 열흘이던 공시 의무 기한을 닷새로 줄이는 내용의 개정안을 채택했다. 일반 투자자가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지분율 변동을 더 빨리 알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조치의 일환이다.
지난해 트위터(현재 엑스) 지분을 사들일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분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 5% 기준을 넘어섰는데도 이를 공시하지 않은 채 낮은 주가에 계속 지분을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10일(현지시간) SEC는 지분 소유주에 대한 공시를 규정한 연방증권거래법 제13D조, 제13G조 개정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향후 연방 관보에 게재된 뒤 90일 이후부터 발효된다. SEC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제13G조의 경우 내년 9월 30일부터 개정안을 준수해야 한다. 제13D조, 제13G조에서 보고서 제출 시 요구하는 구조화된 데이터는 내년 12월 18일부터 지켜야 한다.
일명 '5% 룰'로 불리는 5% 이상 주식 보유자의 보고 의무제도는 해당 기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에게도 경영권과 관련해 유일한 신호 장치다. 하지만 현행 제도처럼 주식 매집 이후 10일 뒤에 공시하면 투자자는 영업일 기준 2주 뒤에나 이 사실을 알게 돼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상장사 지분의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는 보유 지분이 5%를 초과한 날로부터 영업일 기준 5일 이내에 감독당국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제13D조). 기존 법안에서 규정한 '영업일 기준 10일 이내'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약식 지분 공시 의무를 규정한 제13G조도 공시 의무가 강화됐다. 종전까지 단순 투자 목적의 적격기관투자자, 면제투자자, 패시브투자자 등은 기존보다 공시를 훨씬 더 서둘러야 한다. 제13G조 개정안에 따르면 약식 지분 공시 의무를 따르는 모든 투자자는 보유 지분이 5%를 초과한 해당 분기 말로부터 45일 이내에 약식 공시를 해야 한다. 기존에는 5% 초과 지분의 공시 기준이 분기 말이 아닌 '그해 말로부터 45일 이내'였다.
적격기관투자자는 지분 10%를 초과한 해당 월말로부터 5일 이내, 패시브투자자는 지분 5%를 초과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약식 공시하도록 규제가 강화된다. 종전에는 각각 10일 이내에만 공시하면 됐는데, 개정안이 적용되면 모두 5일 이내로 바뀌면서 투자자들에게 유리해진다..
이 밖에 기존 증권거래법의 규제 대상 증권에서 파생상품 범위를 보다 엄밀하게 규정하는 것도 개정안에 반영됐다. SEC는 작년부터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주도 아래 사모펀드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지분 공시 의무를 강화해왔다.
이번 개정안에서 공시 의무를 강화한 것은 2021년 아케고스 파산 사태 이후 사모펀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겐슬러 위원장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오늘 개정안 채택으로 50여 년 전 처음 발효된 규정을 업데이트했고, 반세기 전 마감 기한이 구식으로 느껴진다"며 "급변하는 시장에선 대중이 상장회사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아는 데 10일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SEC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따라 '엑스' 지분 취득 공시 지연으로 집단소송을 당한 머스크 CEO의 판결에도 이목이 쏠린다.
SEC는 지난 5일 머스크 CEO가 트위터 인수 의혹 조사에 응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의 소장을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법원에 제출했다. SEC는 올해 5월 소환 조사에 응했던 머스크 CEO가 조사 예정일인 9월 15일을 이틀 앞두고 이의를 제기하며 소환 조사에 불응했다고 밝혔다.
SEC는 머스크 CEO가 지난해 440억달러(약 59조원)를 들여 트위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증권법과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트위터 지분을 사들일 당시 지분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 5% 기준을 넘어선 후에도 낮은 주가에 지분을 계속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해 4월 4일 머스크 CEO가 트위터 지분 9.1%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하자, 트위터 주가는 전날 종가 39.31달러에서 하루 새 27% 넘게 급등해 49.97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4월 당시 트위터 주주들은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머스크 CEO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그가 공시를 미루면서 트위터 주식을 더 싸게 사들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SEC의 증권거래법 개정안은 기존에 진행 중인 머스크 CEO의 트위터 인수 조사에는 적용되지 않고, 향후 지분 거래에서만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5% 룰
개인이나 기관이 상장·등록 기업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5일 이내(영업일 기준)에 공시해야 하는 제도.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와 일반 투자자의 정보 접근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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