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잔치·선심성 복지 등에 세금 95% 쏟을 판···"쓸 돈이 없다"
고금리에 국채이자 30조 넘을수도
고령화 속 복지지출도 갈수록 늘어
韓만 2년새 국가채무비율 3%P↑
경기대응은 실탄부족에 쉽지않아
쪽지예산 방지, 재정다이어트 필요
돈 쓸 일은 넘쳐 나는데 쓸 돈이 없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이 조만간 한국 정부에도 닥친다.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기록하며 정부의 재정 역량이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에 따른 국채 이자 부담, 고령화에 늘어날 수밖에 없는 복지 지출이 재정 당국의 손발을 묶고 있다. 당장 내년 국세수입의 95%를 국가가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에 써야 한다.
자연스럽게 재정의 원래 역할인 경기 대응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론적으로 정부 재정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확장적, 경기가 좋을 때는 긴축적으로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 재정이 경기 둔화를 완화하고 과열된 경기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나타나 변동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재정 운용 방향은 이와 정반대다.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았던 최근 2년간 남는 돈을 나랏빚을 갚기보다는 ‘돈 풀기’에 집중 투하해버려 정작 불경기와 세수 부족이 예고되는 올해와 내년에 쓸 돈이 없는 상황이다.
11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정책연구원·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 국채 이자 상환 예산은 28조 4000억 원으로 올해 24조 8000억 원에서 3조 원 이상 불어난다. 여기에 연금·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줄일 수 없는 복지 지출을 합한 의무지출은 348조 2000억 원으로 내년 국세수입(367조 4000억 원) 대비 94.8%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85%)보다 10%포인트 가깝게 높은 수치로 이 비중이 90%를 넘은 것은 정부가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재정지출을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구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걷은 세금 전부를 의무지출로 뱉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조차도 낙관적인 전망이다. 정부의 국채 이자 상환 예상 금액은 국고채 평균 조달금리를 4%로 가정했다. 하지만 미국발(發) 고금리로 국내 채권금리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올 6월 3.59%였던 국채 10년물 조달금리는 10월 들어 급상승하며 지난주 기준 4.240%까지 올랐다. 이대로면 내년도 국고채 이자 부담이 30조 원을 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올해뿐 아니라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마저 1%대로 진단하는 기관들이 속속 나타나는 가운데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마지막 패인 재정마저 묶인다는 의미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재정이라는 것은 경기가 괜찮을 때 아껴쓰다가 지금처럼 안 좋을 때 쓰려고 모아두는 것인데, 전 정부의 방만 재정과 현 정부의 지나치게 빠른 감세가 묶여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 규모 대비 과도한 부채는 △소비 위축 등 경제 악화 △실물경기 변동성 확대 요인 △대차대조표 불황 위험 확대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 등 각종 부작용을 유발한다. 결국 정부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는데 빚 때문에 재정 여력이 마뜩잖다는 굴레에 빠졌다. 최근 2년간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119조 원 더 들어왔는데 추경으로 다 써버린 여파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국가부채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채무(D2) 비율은 54.3%였다. 처음으로 비기축통화 10개국 평균을 넘어섰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전 세계 35개국 중 한국을 제외한 비기축통화 10개국의 지난해 말 기준 GDP 대비 D2 비율은 52.0%로 한국보다 낮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19 이후 재정 건전화에 나서며 국가채무비율을 55.6%(2021년)에서 52.0%(2022년)로 낮추는 동안 한국은 51.3%에서 3%포인트 높였다. 이 추세가 꺾이지 않으면 2028년의 한국 GDP 대비 D2 비율은 58.2%로 9.5%포인트 높아진다. 상승 폭이 OECD 37개국 중 1위다.
이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공기업·공공기관 채무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유가에 탈원전 정책이 이어지며 한국전력의 부채는 올해 상반기까지 200조 원을 넘어섰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52조 원이 넘는 부채가 쌓였다. 영업적자를 공사채 발행으로 때우는 상황인데 사채 발행 한도 소진이 임박할 정도로 찍어내는 상황이다. 이들 공사채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만큼 국가부채(공공 부문 부채·D3)의 일종이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부실한 공기업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기업이 동원하는 만큼 이들 부채도 정부 부채로 봐야 하는데 상세한 파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과감한 재정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돈 풀기 요구부터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쪽지 예산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며 “이 같은 선심성 예산을 막고 세세하고 강도 높은 실사를 통해 새는 세금을 잡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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