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검정고무신법'은 갑질 해법일까
불공정 거래 막을 규제 늘려도
창작자 권리 지키기는 어려워
계약 단계서 법률지원 힘써야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 중에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이 있다. 2020년에 발의됐지만, 지난 3월 '검정고무신'의 작가 이우영 씨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분쟁 중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으로 재조명받은 법이다. 주요 내용은 문화상품 유통업자가 제작업자와의 계약에 있어 하지 말아야 할 여러 행위를 규정해놓은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법의 제정을 지원하는 반면,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중복 규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저작권 문제와 방송통신 규제가 어떻게 관련이 되나 싶지만 웹툰이나 OTT 콘텐츠 등 요즘 문화상품의 유통은 인터넷과 플랫폼을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여기서 중복 규제 여부나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다룰 생각은 없고, 다만 큰 흐름에서 문제를 제기해보려 한다. 인터넷 세상이 도래하고 플랫폼의 역할이 커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사업 방식이 늘어났다. 소비자에게는 혜택이 크지만, 변화에 수반되는 부작용도 없을 수 없다. 나라마다 주목하는 부작용 요소가 조금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갑질'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강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플랫폼의 갑질이 유독 더 심한 걸까. 외국 출장길에 현지 플랫폼 업체의 임원을 만날 일이 있어 그쪽 상황을 물어봤다. 다소 의외의 질문이라는 표정으로 자유의사로 합의한 계약 조건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거래니 큰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어본 것이 후회됐다. 한국형 갑질은 계약 단계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도록 압박하거나, 계약이 있더라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법에 호소해도 압도적 물량 공세로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마디로 플랫폼이 특별하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계약을 바탕으로 권리를 지키는 제도적·문화적 틀 자체가 미비한 것이다.
억울한 이들이 있으니 국회와 정부가 나서고, 새로운 법과 규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규제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우리에게는 이미 그런 식으로 늘어난 다양한 규제들이 존재한다. 공정거래법상 불공정행위 규정이나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등은 외국의 경쟁법에는 없는 갑질 금지 조항들을 담고 있다. 이번에 검정고무신법이 논란이 된 것도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 등은 물론 문체부가 관할하는 다양한 법률에도 이미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가 입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의 법으로 갑질 계약을 충분히 막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기야 구름빵 작가의 억울한 사연이 알려진 게 10년 전인데 이우영 작가에 이르러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규제를 늘려도 문제가 계속된다면 규제가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사실 정책적 선택지는 단순하다. 계약 내용의 부당성을 따져 사후적으로 무효화가 가능하게 하든지, 아니면 계약은 넓게 보호하되 처음부터 계약을 잘 맺도록 돕든지다. 검정고무신법과 같은 접근은 정부가 계약의 불공정성을 판단해 제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자를 추구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계약과 사적 자치의 원칙은 선진경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급속히 발전하는 문화산업에서 갑을관계의 불공정성을 판단하는 일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투자금이 걸린 계약의 위반 여부를 놓고 분쟁 중인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 뜻에서 규제적 접근보다는 무명 창작자에 대한 법률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정책에 힘을 써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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