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세상을 바꾸는 씨앗 기술
1928년 등장해 세계로부터 각광을 받던 꿈의 물질이 100년도 안 돼 퇴출당했다. 바로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 프레온가스(CFC)다. 프레온가스가 처음 발명됐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독성 없는 '꿈의 냉매'로 부르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스프레이부터 냉장고와 에어컨 냉매, 화장품과 살충제의 분무제 등에까지 폭넓게 사용했다.
하지만 프레온가스가 오존층에 구멍을 낸다는 악몽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2010년 1월 1일 프레온가스는 몬트리올의정서 채택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전면 퇴출됐다. 그리고 모두의 노력으로 2040년이면 1980년대 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꿈의 물질이 전면 금지되기 훨씬 이전인 1988년, 필자의 회사는 '세계 최초'로 프레온가스 사용 중지를 선언했다. 그 선택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아황산가스나 암모니아처럼 유독성과 폭발 위험성이 높은 물질의 대안으로 프레온가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자의 회사는 전면에서 노력했고 4년 만인 1992년에는 일본에서, 이듬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속을 지켰다. 환경보호를 위한 의지로 누구보다 앞서 이뤄낸 결과였다. 이후 회사는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개발해 왔다. 제품의 씨앗인 기술부터 친환경으로 바꿔 깨끗한 싹을 틔우기 위함이었다.
2015년에는 독자적인 '드라이 섬유 기술'을 개발해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을 사용해 종이를 그 자리에서 재활용하는 획기적인 장비인 페이퍼랩(PaperLab)을 만들었다. 사용한 종이를 넣으면, 깨끗한 새로운 종이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색상을 입힐 수 있고 두께를 조절할 수도 있다. 새로운 종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은 단 반 컵. 실제 종이를 재활용하는 과정과 비교해 보면 단 1%의 물만 사용하는 것이다. 폐지만 사용해 종이 운반이 필요 없다 보니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새로운 종이 생산 방식이 신기한지, 본사 사무소에 방문한 사람들은 보통 페이퍼랩 쇼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모두가 신기해하고 관심을 보일 때면, 필자는 우리가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차 오른다. 우리가 개발한 것은 단순히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탄소를 줄이는 기술이며, 궁극적으로 탄소 중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회사는 프레온가스 사용 중지 선언의 정신에 이어, 올해까지 전사적으로 RE100을 달성하고 2050년에는 탄소제로를 넘어 '탄소네거티브'를 실현하겠다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어려운 도전일 수 있지만, 회사 창립 이래 80년간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달려왔듯이 우리는 이 약속을 분명 지킬 것이다. 우리의 포부가 씨앗이 되어 모두가 환경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수 있길 기대한다.
[후지이 시게오 한국엡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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