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③바이오벤처의 백신 R&D에서 정부 지원이 중요한 이유
[편집자주] 전세계를 강타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대유행 기세가 잦아들었다. 감염병 사태에서 뜨겁게 달아올았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도 다소 꺾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유행이 절정에 달했을 때 부각된 백신·치료제 개발역량 부족에 대한 경각심도 동시에 사그라들었다고 우려를 표한다. 신종 감염병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만 관심과 지원이 일회성에 그치면서 중장기적인 연구개발역량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이들은 코로나19를 비롯해 그동안 감염병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의 지속'을 꼽는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주도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언제든 새로운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백신·치료제 개발 풍토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각 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5회에 걸친 기고문을 통해 들어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벤처기업은 구조적 특징인 혁신성, 기술성, 효율성, 유연성을 통해 대기업을 능가하는 활약상을 보여줬다. 감염병 사태에 활약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mRNA-1273(모더나스파이크박스주)’는 미국의 신생기업인 모더나와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가 협력해 만들었다.
면역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운반체로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바이러스벡터백신 ‘AZD1222’ 또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창업한 벤처기업이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협업해 탄생시켰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에서 빠르게 백신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이오벤처의 이같은 역량이 크게 기여했다.
바이오 벤처기업이 백신 개발에서 거대기업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까닭은 특유의 구조적인 특성 덕분이다. 대부분 기술창업인 많은 바이오 기업들은 시작할 때부터 백신개발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부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전략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기업보다 몸집이 가벼운 벤처기업은 다양한 상황에서 결론을 내리고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이 훨씬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또 ‘A’란 목표하에 움직였을 때 ‘A-1’이나 ‘B’와 등의 결과가 나오게 됐더라도 이러한 결과에 맞춰 빠르게 다음 대책에 착수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투자의 규모가 큰 대기업에선 일반적으로 그동안의 연구나 투자의 방향전환이 쉽지 않곤 하다.
바이오 벤처기업의 빠른 연구전략 변경이 이뤄진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인테라의 경우 처음에는 바이러스 유사입자(VLP)를 활용한 백신 개발에서 출발했지만 연구가 진행되면서 단일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보다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 예방 백신에 적용할 수 있는 나노입자 방식의 백신 제조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VLP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을 때 보다 다양한 바이러스 종 (로타, 지카, 뎅기 바이러스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 변종 감염병 사태와 같은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바이오 벤처기업이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혁신성, 기술성, 효율성 유연성 등의 특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문인력‧시설장비 초기 인프라 확보 어려운 바이오벤처
바이오 벤처기업의 가장 큰 단점은 첫걸음을 떼고 자리를 잡기까지 초기 단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인력과 장비‧시설을 충당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생기업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인력을 확보하는데는 애를 먹기 마련이다. 전문인력들이 더 좋은 처우나 큰 규모의 조직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장비와 시설 인프라다. 10~20년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과 비교하면 신생 바이오벤처기업의 시설과 인프라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당장에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도 부족하다. 장비와 시설을 갖추기 위해 투자유치에 힘을 쏟게 된다. 하지만 초기 성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거나 부족한 상황에서 벤처캐피탈(VC)로부터 큰 규모의 투자유치는 쉽지 않다.
막대한 연구개발 인프라 조성 비용…초기 비용은 국책과제 역할 중요
바이오 벤처기업의 초기성장에서 정부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란 원석을 갖고 있지만 이를 가공할 전문인력과 시설‧장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의 국책과제는 바이오 벤처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바이오 벤처기업 연구개발 비용의 30~50%는 국책사업으로 충당된다.
일각에서는 바이오 벤처기업에 투입되는 국책사업 비용이 허투루 쓰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국책사업에서 운용되는 자금은 명확한 사용처가 정해져 있다. 연구개발이 아닌 회사 운영과 관련한 부분에선 사용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관련해 최근 일각에서 언급되는 ‘국책사업비로 먹고사는 좀비기업’ 이야기도 현실과는 다르다. 일부 기업이 국책사업비로 회사를 연명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연구개발비보다 인건비와 같은 운영비가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국책사업 지원을 받아 사용된 내역에 대해선 2중, 3중으로 엄격한 회계감사도 받게 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과 같이 국책사업이 바이오 벤처기업을 ‘먹여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쉽지가 않다.
바이오벤처의 희망줄 국책사업, 감축 아닌 철저한 관리감독 중요
혁신 역량을 지닌 바이오 벤처기업의 초창기 자립이 이뤄지기 위해선 국책과제 사업이 필수적이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는 유효물질을 발굴하고 초기 임상을 진행하는 초반 개념증명(POC) 단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문인력이나 시설‧장비가 부족한 바이오 벤처기업은 국책과제 사업을 통해 외부 위‧수탁 업체에 필요한 실험이나 제조를 의뢰하게 된다.
현재 연구개발 국책사업은 이러한 부분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관련 지원이 끊기면 당장 위수탁 업체 의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백신개발사업단의 지원대상 과제들을 보면 비임상,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 임상진입 이러한 개별목표를 세워서 지원하려 하고 있다. 개발물질의 효능을 확인하고 임상단계를 거치는 일련의 과정까지 단계별로 진행된다.
국책사업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선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면 된다. 예산을 줄일 필요 없이 지금 까지처럼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사업을 관리‧감독하면 된다. 단순히 총액을 줄이는 것은 현재 낭비 요소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없다.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임상시험 이후 상용화 단계에서도 정부 지원의 역할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바이오 벤처기업은 후기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뒤 해외의 큰 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된다. 공동개발 계약을 맺어서 더 다른 큰 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후기 개발을 통한 자금 지원을 받게 된다.
이를 위해선 글로벌 네트워킹이 필수적이다. 작은 회사가 해외 유수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선 큰 규모의 심포지엄이나 포럼 등이 행사에서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이런 자리는 정부가 마련하긴 어려우며 개발사업단 등 사업단 차원에 추진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백신개발기술선도 사업단이 최근 개최한 컨퍼런스에선 다수의 백신 개발 세션이 마련된 바 있다. 빌&멀린다 재단이나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해외 기관들하고 네트워킹을 가질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사업단 예산이 큰 폭 삭감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흔히 사업단 예산이 삭감되면 R&D 비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사업단은 R&D외에도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업단 예산이 삭감되면 R&D 비용만 삭감된 것이 아니라 이같은 간접적인 사업들에도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R&D 연구개발 비용 삭감은 바이오벤처 생태계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예산 운용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논의 전개가 필요하다.
[최덕영 인테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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