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교권침해 맞서는 소설 펴내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문장이다. 알 속의 새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타인에 의해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문경민 작가(47·사진)가 출간한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지켜야 할 세계'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 윤옥은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사들과 맞서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국어교사다. 주변에서 미운털이 박히면서도 윤옥이 꿋꿋이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것은 어린 시절 장애를 가진 동생과 헤어졌던 사건이 윤옥의 세계를 무너뜨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지 못한 인간은 허물어진다. 장애인 아들 지호를 엉터리 복지시설에 버린 윤옥의 엄마는 죄책감으로 망가진 채 여생을 보내고, 야학 활동이 삶의 중심이었던 수연은 야학 교사 정훈에게 성착취를 당한 뒤 자취를 감춘다. 성실한 교사였으나 승진을 위해 학생과 동료 교사를 겁박하는 학생주임 성탁 역시 망가져버린 자신의 세계에 절망감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은 것은 초지일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부패 교육감이 된 정훈뿐이다.
소설은 연대와 돌봄이 무너진 세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윤옥은 수연의 혼외자 상현을 입양해 키우며 메말랐던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낀다. 곤히 잠든 상현을 바라보며 윤옥은 충만해진 자신의 마음에 애틋함을 느낀다. '눈가 근육이 뭉치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눈물이었다.' 윤옥의 엄마 역시 제주도로 건너가 복지시설의 장애인들을 아들 지호라고 생각하며 돌본다. 그것이 자신이 버린 지호에게 조금이나마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에서 교사 윤옥이 겪는 사건들은 교권 침해를 겪고 지난 7월 극단 선택을 한 서이초 교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현직 초등 교사이면서 9월 2일 교사들의 7차 집회에서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한 문 작가는 "이 소설은 7년 전부터 구상한 것으로 서이초 사건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교권 침해로 고통받는 교사들의 상황과 공통점이 있다"며 "7년간 품어온 이 작품이 인간의 구원과 연대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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