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10조 기부하고 떠난 억만장자, 방 2칸 소형 아파트에서 눈 감다

조윤영 2023. 10.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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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업체 DFS 창립자 척 피니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 훨씬 재미 있다”
10일(현지시각) 대서양 자선재단은 세계적인 면세점 업체인 디에프에스(DFS)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프랜시스 척 피니(92)가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자선재단 페이스북 갈무리

80억달러(약 10조7000억원)가 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미국의 억만장자 찰스 프랜시스 척 피니가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일(현지시각) 대서양 자선재단은 세계적인 면세점 업체인 디에프에스(DFS)의 공동 창립자인 피니가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대서양 자선재단은 그가 설립한 재단이다. 재단은 누리집에 “평생 전 재산을 글로벌 자선 활동에 바친 설립자 피니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망 전까지 수년간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칸짜리 소형 아파트를 임대해 부인과 함께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피니는 2020년 9월 재단을 해산할 때까지 미국, 아일랜드 공화국, 영국, 북아일랜드,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베트남, 버뮤다, 쿠바에 80억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전달했다. 부인과의 노후 생활을 위한 200만달러(약 26억원)와 5명 자녀에게 남긴 유산을 뺀 재산 전부였다. 앞서 2011년 2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과 함께 생전에 반드시 기부하지 않더라도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던 서약을 지킨 것이다. 피니는 그의 전기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에서 “(살아있는 동안 기부를) 한번 해보면 당신도 좋아할 것”이라며 “죽었을 때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공개하는 자선가들과 달리 피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대학, 병원, 과학 연구, 인권 단체 등에 기부했다. 그가 27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기부한 5개 대륙의 1000여개 건물 가운데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은 한 곳도 없다. 단체와 개인에게 전달한 기부금은 출처를 감추기 위해 자기앞수표로 지급했다. 수혜자들은 익명을 원하는 관대한 의뢰인이 기부한 돈이라고만 전해 들었다.

10일(현지시각) 대서양 자선재단은 세계적인 면세점 업체인 디에프에스(DFS)의 공동 창립자인 찰스 프랜시스 척 피니(92)가 전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자선재단 페이스북 갈무리

1931년 4월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피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역한 뒤에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 코넬대에 입학했다. 1956년 코넬대를 졸업한 뒤 1950년대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어 유럽에서 귀국한 미군을 대상으로 주류, 담배, 향수를 판매했다.

그 뒤 국외 관광이 급증하며 면세점은 유럽, 아시아, 미주 전역의 공항과 주요 도시에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피니는 이미 50살에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콜로라도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리비에라 등에 호화로운 저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피니는 즐겁지 않아했다고 한다. 그는 성대한 연회, 요트 등 호화로운 생활에 괴로움을 느꼈다. 코너 오클리어리는 2007년 펴낸 피니의 전기 ‘억만장자가 아니었던 억만장자’에서 “그는 많은 돈을 가질 권리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돈, 보트를 사는 것, 모든 치장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피니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그만뒀다. 리무진을 팔고 대신 지하철이나 택시를 탔다. 비행기도 일반석을 탔다. 옷은 기성복으로 샀고 고급 레스토랑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익명으로 기부하기로 결심한 피니는 1982년 영국령인 버뮤다에 재단을 설립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정체는 1997년 그와 디에프에스의 또다른 공동 설립자가 면세점 지분을 루이비통모엣헤네시에 매각한 뒤 공개됐다.

피니에게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가 넘는 기부금을 받은 코넬대는 2012년 그에게 ‘업계의 아이콘’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당시 코넬대는 15달러(약 2만원) 안팎의 저렴한 시계를 차는 것으로 알려진 피니에게 일부러 13달러(약 1만7000원)짜리 카시오 시계를 선물했다. 이에 피니는 “이베이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해줘 감사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20여년 전 피니는 기부 서약서에 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에 개인적으로 헌신하는 것보다 더 개인적으로 보람되고 적절하게 부를 사용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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