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지수’ 노예에서 해방되는 날

에디터 2023. 10. 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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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복 박사는 내 방의 두 번째 연구교수이다.

EMM은 국내 생화학분자생물학회에서 간행하는 잡지로 당시 인용지수가 겨우 2점을 넘겨 해당 분야 하위권 잡지였다.

국내 생명과학자들이 EMM 인용지수를 높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하지만 때늦은 인용지수 상승 소식이 이제는 연구 분야를 떠난 이 박사에겐 위로조차 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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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11: Yee SB, Baek SJ, Park HT, Jeong SH, Jeong JH, Kim TH, Kim JM, Jeong BK, Park BS, Kwon TK, Yoo YH. zVAD-fmk, unlike BocD-fmk, does not inhibit caspase-6 acting on 14-3-3/Bad pathway in apoptosis of p815 mastocytoma cells. et al. Exp Mol Med, 2006;38:634-642.

■사람: 이수복 연구교수

■학문적 의의: 세포사에서 케스파제-6와 14-3-3/Bad 통로

이수복 박사는 내 방의 두 번째 연구교수이다.

일본 도쿄대에서 희귀 분야인 인구유전학 분야를 연구하고 귀국하였으나, 국내 대학에서 해당 분야 신규채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 박사는 세포분자생물학 분야 연구로 전환하였다. 우수한 연구 업적을 내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내 실험실에 가담하였다.

나는 세포사 연구에서 획을 긋는 연구 결과를 내어 이 박사를 주저자로 논문을 간행하고 싶었다. 이 박사도 노력하여 의미 있는 자료를 얻었다. 세포사 실행 과정에 주된 관심을 받지 않던 caspase-6의 역할을 밝혀내었으며, 이 효소가 14-3-3/Bad 통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료를 얻어 내었다.

이수복 박사 논문이 CDD에서 EMM 게재로 바뀐 이유

자료로 미루어 세포사 전문 잡지 중 최고 명성인 'Cell Death Diff'(CDD)에 제출할 만하다고 판단하였다. 논문은 심사 후 간단한 지적 세 가지를 받았다.

그런데 "방어 기회를 단 한 번만 준다"는 지적에는 주의하지 않았다. 이 세 가지 비평에 대하여 완전히 방어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추가하고 방어 편지를 보낸 후 채택되리라 자신하였다.

그러나 한 심사자가 사소한 한가지 비평을 새로 제기하였다. 편집자는 한 번 만에 방어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채택을 거부하였다. 편집자와 심사자가 내통하여 고의로 새 비평을 넣어 논문을 탈락시켰음이 확실하였다.

항의하였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미국' 연구자라면 소송을 제기할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논문은 'Exp Mol Med'(EMM)에서 간행되었다. EMM은 국내 생화학분자생물학회에서 간행하는 잡지로 당시 인용지수가 겨우 2점을 넘겨 해당 분야 하위권 잡지였다. 논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점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EMM 표지. [사진=유영현 제공]

지금 EMM 인용지수는 13에 육박한다. 국내 생명과학자들이 EMM 인용지수를 높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이 잡지의 현재 인용지수는 CDD보다 오히려 높다. 하지만 때늦은 인용지수 상승 소식이 이제는 연구 분야를 떠난 이 박사에겐 위로조차 되지 않을 테다.

인용지수는 도서관 사서에게 잡지 선정 기준을 제공하기 위하여 수립된 개념이다. 1975년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ISI에서 처음 발표하였다. 인용지수는 잡지에 간행된 논문들의 과거 2년간 인용횟수를 합하여 논문수x2로 나눈 값이다.

모름지기 모든 수는 강력하다

2000년경부터 인용지수가 연구 업적의 수월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이용되었다. 논문의 내용보다 인용지수 점수가 논문 질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연구과제 선정 평가 등 업적의 가치를 논하는데 몇 점짜리 논문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게 되었다.

인용지수라는 강력한 수 앞에서 논문의 내용 등 다른 설명은 무너졌다. 인용지수가 1점이라도 더 높은 잡지에 논문을 게재하려는 경향은 대세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인용지수의 노예가 되었다.

나도 인용지수의 노예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인용지수가 높은 잡지에 논문을 내려는 대열에 휩쓸려 지냈다. 내게 은퇴는 비로소 이 숫자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에디터 코메디닷컴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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