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권 심판 vs 국정 안정…‘동상이몽’ 강서구청장 투표소 풍경
‘민주 텃밭’ 화곡동 “보궐선거 책임 후보 안 돼”
‘보수 강세’ 가양동 “국정 운영 안정화 도움을”
내년 총선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로 이목이 쏠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11일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이날 오전과 오후 둘러본 투표소에는 주로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평일이어선지 직장인이나 젊은 청년 유권자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울신문은 이날 화곡본동주민센터, 화곡초등학교, 발산1동주민센터, 가양1동주민센터 등 4곳의 투표소에서 만난 30여명의 유권자에게 어떤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는지 물었다. 노후 원도심인 화곡동과 신도심이 들어선 마곡지구의 표심은 확연히 갈렸다. 후보 개개인의 정책공약이나 경쟁력을 보고 뽑았다는 답변은 드물었다. “당을 보고 뽑았다”는 구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꼽히는 화곡동 투표소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진교훈 민주당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나타냈다. 화곡본동 주민센터에서 투표한 40대 강승우씨는 “현 국정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일종의 경고가 필요하다. 이 분위기가 내년 총선까지 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직전 강서구청장이었던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의 유죄 확정으로 선거가 치러지는 데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화곡초등학교 투표소를 방문한 이순덕(60)씨는 “보궐선거 책임이 있는 후보를 또 내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주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현 정부와 집권당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여성 직장인인 서모(41)씨는 “경찰 출신인 진 후보가 당선되면 강서구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 본다”라며 “전세사기 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면 거대 야당을 견제하고 여당에 힘을 실어 상대적으로 낙후된 강서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이모(72)씨는 “줄곧 보수 정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라며 “최근 대법원장 임명이 안 된 것만 봐도 그렇다. 여당 숫자가 적어서 나라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 내년까지 이 분위기가 이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70대 박모씨는 “김 후보가 지역 재개발 공약을 잘 지켜주리라 본다”라며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7.0%포인트 가까운 득표율 우위를 보였던 가양1·2동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수 세가 강한 분위기였다.
가양1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만난 60대 김모씨는 “국정 운영이 안정돼야 한다”라며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발산1동주민센터 투표소를 찾은 오복만(56)씨는 “북한 퍼주기는 더는 안 된다. 보수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고, 고명환(67)씨는 “전 정권 심판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박종기(63)씨는 “‘아웃’된 사람이 다시 나오면 안 된다”며 “진 후보가 강서구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고 하니 일을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심모(73)씨는 “강서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후보에게 투표했다. 직전 강서구청장은 별 도움이 안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여야 총력전 양상에 정치 불신도
“누구 하나 찍기 싫어 투표 포기”
총선 전 ‘신뢰회복’ 정치권 과제
거대 여야 총력전이 유권자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상대적으로 ‘공약’은 후퇴하는 모습이었다. 대다수 유권자는 후보별 주요 공약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공약을 선택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고 답했다.
진 후보는 재개발·재건축 신속추진, 노인종합복지관 설치 등을 약속했고 김 후보는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지속 추진, 방화건설폐기장 이전과 열병합발전소 건립 저지 등을 공약했다. 김포공항 일대 고도제한 완화와 구도심 개발은 공통 공약이었다.
권수정 정의당 후보는 전세피해 원스톱종합지원센터 운영 등을, 권혜인 진보당 후보는 방사능 안전급식 전면 확대 등을 제시했다. 김유리 녹색당 후보는 월 교통비 지역화폐 환급 등을, 고영일 자유통일당 후보는 외국어 교육특구 조성 등을 내걸었다.
30대 김모씨는 “고도제한 완화 등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건 알고 있다”며 “그 외 공약은 사실 선거 직전에 급하게 만든 느낌이라 별로 영양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60대 박모씨 역시 “공약은 귀찮아서 보지도 않았다. 실현되리라 믿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나친 여야 대립에 정치 불신을 토로하는 시민도 있었다. 총선까지 양당 대립이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신뢰 회복은 정치권이 안은 과제가 됐다.
조모(83)씨는 “누구 하나 찍어주기 싫어서 투표를 포기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창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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