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권고
광주시 “위법 아니어서 시정명령 대상 아냐” 반발
권고 미이행 시 시정 명령 발동할 듯…기관 소송도 염두
국가보훈부가 11일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진행을 즉각 중단하고 이미 완료된 사업은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보훈부가 처에서 부로 승격된 후 지방자치단체 사무와 관련해 처음으로 내린 시정 권고다. 보훈부는 지방자치단체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사업을 중단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김일성도 만들어주지 못한 정율성 공원을 대한민국에서 만들고 기리는 것은 일부 위정자의 안일한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1914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한 정율성은 중국·북한으로 이주한 작곡가다. 정율성이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이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는 군가로 쓰인 데다 정율성이 항일운동가라는 객관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보훈부의 주장이다.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적군의 사기를 북돋웠던 나팔수이자 응원 대장을 기리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광주시는 정율성 역사공원과 정율성 전시관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에는 정율성의 이름을 딴 정율성로와 거리 전시관이 있고 정율성이 입학한 전남 화순군 능주초등학교(당시 능주공립보통학교)에는 정율성 교실과 흉상·대형 벽화가 조성돼있다. 화순군에는 정율성 생가도 있다.
보훈부는 이날 “정율성 관련 사업 일체를 즉각 중단하고 이른 시일 내에 기존 사업에 대해 시정 조치를 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시정 권고 공문을 광주시와 전남 화순군, 전남 교육청 등 6개 기관에 발송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로 같은 경우 (이름을) 바꾸는 것은 지자체장들이 마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미 완료된 기념사업 역시 전면 폐기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광주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지방자치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다”며 “정율성 기념사업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35년간 지속돼 온 한·중 우호 교류 사업으로 위법한 사항이 없다”고 반발했다.
보훈부는 광주시 등이 시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방자치법 188조에 규정된 시정 명령을 발동할 계획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 부처 장관 등은 시정을 명령하고 기간 내 이행되지 않으면 직접 명령·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 보훈부는 정율성 기념사업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어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는 조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훈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하면서 “시정 명령이 발동되면 진행 중인 사업을 중앙정부가 전면 중단할 수 있는 강제권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시정 권고 공문을 수신한 6개 기관 사이에서도 온도 차가 꽤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검토를 해보니 지자체와 중앙 정부가 중요한 정책에 대해 서로 반대 의견을 갖고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시정 명령이 발동되면 광주시 등이 기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박 장관은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와 충돌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 “헌법 가치에도 중요도, (즉) 헌법의 본질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라며 “나중에 이 사건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때 그런 부분을 제대로 짚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능주초 교장 서재숙씨는 이날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8월 말 이후 (정율성 행적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며 능주초에 설치돼있는 벽화, 동상, 기념교실 등에 대해 “화순교육청에 철거 및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고, 행정 절차에 의해 철거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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