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국민 편익’일까
[왜냐면] 현정희 |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공공부문 파업을 둘러싸고 ‘편익’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철도노조 파업 때 정부와 코레일은 ‘국민 편익에 역행하는 파업’이라며 역정을 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도 ‘국민 편익’ 설명이 뒤따랐다. 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의 쟁점으로 떠오른 비대면 진료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주요 논리 역시 ‘국민 편익’이다. 그런데 묘하다. 이런 정부 정책을 개악으로 규정하며 막겠다고 나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 역시 ‘모두의 삶을 지키는 파업’, 즉 국민 편익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건강보험 보장성’을 예로 들어보자. 윤석열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은 건강보험 보장성 후퇴를 강행한 정부다. 그 덕분에 이제 병원에 가면 자기공명영상(MRI)과 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축소돼 병원비가 톡톡히 오르게 됐다. 지난 문재인 정부와 그 이전 이명박 정부도, 심지어 중도 하차한 박근혜 정부 역시 암과 중증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꾸준히 높여온 것과는 거꾸로다. 윤석열 정부는 이로도 모자라 비대면 진료의 수가는 일반 진료보다 30%나 가산한다고 한다.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가산하는 이유는 이른바 ‘위험 관리’때문이라는데,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을 인정한다면 이를 원천적으로 재검토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옳다. 수가를 더 지급하면서까지 강행할 이유가 없다. 실손보험 간소화도 ‘국민 편익’보다는 ‘재벌 편익’에 더 가깝다. 국민의 민감한 질병 정보를 담고 있는 진료 내역이 통째로 민간보험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상품과 비슷한 물건이 소셜미디어(SNS) 광고에 뜨듯,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온갖 보험 상품을 안내하는 문자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아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공공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2023년 3월까지 정부가 쏟아부은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은 모두 8조6544억원이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민간병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만일 이 예산으로 인구 15만명 이상 중진료권 70곳 가운데 공공병원이 없는 24곳에 공공병원을 지었다면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확보해 재난위기에 대응할 최소한의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도 국민 편익인가?
부산교통공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역무 업무 등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안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는 못할망정, 안전과 생명이 희생되더라도 이른바 ‘경영 효율화’를 위해 인력을 더욱 줄이겠다는 말과 같다.교통요금 인상도 ‘국민 편익’과 거리가 멀다. 지하철요금 인상의 이면에 ‘공익서비스 제공에 따른 손실 보전’(PSO) 예산 증액을 거부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의 외면이 있다. 도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요금으로만 운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용자가 부담하는 요금만으로 재정을 충당할 경우 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요금이 비싸지면 시민의 이동권이 침해되고 대중교통이 제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 대도시의 대중교통 운영비 가운데 요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수준을 나타내고, 미국 36.9%, 프랑스 파리는 30%에 불과한 이유다.
‘편익’은 ‘편리하고 유익함’을 뜻한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하철-공공의료-건강보험 정책에서 등장하는 ‘편익’의 주체는 국민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보험을 영위하고 있거나, 철도-지하철 운영에 눈독을 들이거나,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재벌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건 재벌의 수익이 아니다. 서울대-경북대병원 노동자들이 11일부터 파업에 나서고 부산지하철,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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