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해자 목소리 담는 ‘범죄피해평가제’, 확대 시행에도 ‘경찰서당 10건’ 제자리 예산[2023국감]

이유진 기자 2023. 10. 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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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한수빈 기자

형사 절차에 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범죄피해평가제도’가 지난 3월 전국 모든 경찰서로 확대 시행됐지만 정작 예산은 경찰서당 평균 10건의 집행만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강력 범죄 피해자 10명 중 1명꼴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11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24년도 범죄피해평가제도 예산으로 4억3500만원을 책정했다. 지난해 책정된 3억7800만원보다 5700만원 늘어난 액수다. 경찰청은 지난 3월 범죄피해평가제도를 전국 230개 경찰서에서 259개 경찰서로 확대 시행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예산은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피해평가 1건당 상담비 5만원 2회분, 평가보고서 작성 5만원, 감수비 3만원을 더해 총 18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별도의 정책 홍보 비용, 전문가 양성 교육비 등을 제외하면 내년도 예산으로 피해평가제도를 실시할 수 있는 사건 수는 2300건에 불과하다. 경찰서별로 1년에 평균 10건꼴이다. 경찰청이 집계한 지난해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만4954건이다. 피해자 10명 중 1명꼴로만 적용받는 셈이다.

최근 5년간 ‘범죄피해평가제도’ 예산 현황(위)과 운영관서 및 실시건수 현황.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범죄피해평가제도는 외부 심리전문가가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신체적·심리적·경제적 피해 등을 종합 평가한 뒤, 수사관이 그 보고서를 수사서류에 첨부하는 제도다. 피해자의 구체적인 피해 내용과 의견이 가해자 구속영장 발부 및 양형 등 형사 절차에 반영되도록 한다. 지난해 230개 경찰서 기준 총 1696명(여 1450명, 남 246명)의 피해자가 피해평가제도에 참여했다. 올 상반기에는 총 1137건이 시행됐다. 유형별로는 성폭력 494건(43%), 폭력 289건(25%), 스토킹 145건(13%), 살인 66건(6%), 기타 143건(13%) 순이었다.

경찰청이 지난해 제도를 이용한 피해자(1026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96%가 제도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91%는 다른 피해자에게도 추천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성과도 나타났다. 지난해 법원이 “도망 염려 부족”으로 구속영장을 한 차례 기각한 강간 가해자에 대해 경기남부경찰청은 보완 수사와 함께 범죄피해평가를 실시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고, 피해자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자살 위험성이 높다는 전문가 의견을 첨부해 결국 영장이 발부됐다. 교제폭력 사건에서 재판부가 범죄피해평가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해 “피해자의 정신적 후유증도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에 반영한 사례도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산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일부서는 1년에 10건으로도 충분해 운영에 큰 차질은 없다”면서도 “더 많은 예산이 반영되면 피해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제도를 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병원 의원은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 상황을 수사나 재판과정에 반영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범죄피해평가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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