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물보다 싼 목숨…발굴 현장에서 사람이 계속 파묻혀 죽는다
법·제도 방치 속에 인명사고·산재 계속 발생
사람 죽어도 ‘유물 훼손’보다 제재 수위 낮아
“기초적 안전관리도 안돼…이제는 개선해야”
무너진 흙더미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는 지난해 11월30일, 경기 화성시 비봉면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일어났다. 전원주택 택지개발 전 문화재 매장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었다. 조사원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땅을 팠다. 폭 6m, 깊이 5m의 트렌치(도랑)를 파 내려가던 중, 트렌치의 서쪽 면이 갑자기 무너졌다.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30대 준조사원 A씨의 하반신이 묻혔다.
40대 굴착기 장비 기사 B씨가 A씨를 구하기 위해 트렌치로 내려갔다. B씨가 A씨를 구하려 애쓰던 오후 2시40분쯤, 트렌치의 반대편 면이 무너지면서 흙더미가 두 사람을 완전히 매몰시켰다. 두 사람은 결국 숨졌다.
문화재청과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조사를 맡은 발굴조사기관은 발굴조사 매뉴얼에 규정된 토사(흙더미) 각도와 높이 등을 지키지 않았다. 무리하게 흙을 쌓아 토사가 무너진 것이다. 문화재청에 낸 안전관리계획서도 지키지 않았다. 현장 관리감독자도, 위험성평가도, 굴착작업자 특별안전교육도 없었다. 출입금지 표지, 안전모·안전화 같은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화성 비봉면 사고는 꾸준히 반복되는 발굴조사 산업재해의 전형이다. 발굴조사는 학술 목적뿐 아니라 유적이 많은 지역에서 공사하기 전 거치는 필수 절차다. 지난 6월30일 기준 전국에 408곳의 발굴 현장이 있는데, 기본적인 안전보건의무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관리·감독이 거의 되지 않는 탓이다.
‘사각지대’이자 ‘무법지대’인 발굴 현장에서는 매년 수십 명의 산재 사고재해자가 나오고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 사람이 죽고 다쳐도 행정처분은 솜방망이다. 유물·유적을 훼손하면 발굴조사기관의 등록이 즉시 ‘취소’되지만, 인명사고에 대한 제재는 ‘경고’에 그친다. 화성 비봉면 사고를 낸 발굴조사기관도 경고 처분을 받는다.
‘유물보다 싼 목숨’, 발굴 현장 노동안전의 현주소다.
사고가 계속 반복된다…매번 같은 원인으로
발굴 현장 산재 대부분은 매몰 사고다. 굴착 기울기 등 ‘기본’조차 지키지 않아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문화재청과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받은 ‘2015~2022년 발굴 현장 주요 안전사고 9건 관련 자료’를 보면, 9건 중 6건의 원인이 토사 붕괴였다. 2건은 정리·휴식 중 발생한 사고이고, 1건은 태풍에 의한 천막 붕괴 사고였다. 9건의 사고로 9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기초적인 안전관리 부실이 인명사고를 낳았다. 2016년 12월15일 경북 영주 문수면 사고(2명 사망, 1명 부상)를 조사한 안전보건공단은 재해조사의견서에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굴착 지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굴착 기울기를 준수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트렌치의 경사면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불과 반 년 뒤인 2017년 5월23일 전남 해남 계곡면 사고(1명 사망, 2명 부상)는 영주 문수면 사고의 ‘판박이’다. 수직에 가까운 굴착면이 무너지면서 작업자들을 덮쳤다. 재해조사의견서에 기록된 사고원인은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굴착 지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굴착 기울기를 준수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영주 문수면 사고 재해조사의견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사고 피해자 대부분은 ‘간접고용 일용직’이다. 9건의 사고에서 사망자 9명 중 7명이, 부상자 11명 중 10명이 간접고용 일용직이었다. 발굴조사기관 대부분이 상시직원 ‘30명 이하’인 영세사업장인데, 위험한 작업을 외부 일용직에 맡겼다.
크고 작은 산재사고는 1년에 수십 건씩 일어난다. 류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매장문화재조사기관 산재 현황’을 보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237건의 산재가 승인됐다. 이 중 227건이 ‘사고’, 10건이 ‘질병’이다. 사고 산재를 유형별로 보면 ‘골절’이 113건으로 가장 많고 ‘파열·열상’이 48건, ‘삐임’이 27건 등이다.
사람 죽어도 ‘경고’…유물보다 싼 목숨
인명사고가 빈발하는데도 발굴조사기관 등록취소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문화재법)상 발굴조사기관 즉시 등록취소 요건은 ‘거짓 등 부정한 방법을 써 조사기관으로 등록한 경우’ ‘고의나 중과실로 유물·유적을 훼손한 경우’ ‘지표조사·발굴조사보고서를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경우’다. 업무정지 요건은 ‘지표조사·발굴조사를 부정하게 하거나 보고서를 부실하게 작성했다고 문화재위원회에서 인정된 경우’와 ‘발굴허가 내용이나 허가 관련 지시를 위반한 경우’다.
인명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은 업무정지 요건 중 ‘발굴허가 내용이나 허가 관련 지시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시 안전보건관리사항을 담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안전관리 안내서(매뉴얼)’를 ‘발굴허가 지시사항’으로 간접 준용하고 있다. 지시사항인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인명사고가 난 것을 ‘지시사항 위반’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어겼을 때의 업무정지 수위는 고작 ‘경고(1차 위반)’다. 2차 위반 시에도 업무정지 1년, 3차 이상 위반 시에도 업무정지 2년에 그친다. 업무정지 기간 내 미달사항을 보완하지 못한 때에야 등록취소 처분이 가능하다. 인명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이 ‘과실로 인한 유적·유물 훼손’이나 ‘지표조사 보고서 오류’에 대한 제재보다 가볍다. 경고 처분도 거의 내려지지 않는다. 기자가 분석한 주요 인명사고 9건 중 실제 행정처분이 진행된 건 2019년 전북 진안 성산리 사고(1명 사망 1명 부상)에 대한 ‘경고’ 1건뿐이다.
4대강 이후 우후죽순…법적 관리 ‘방치’
발굴조사현장 안전관리가 사실상 ‘방치 상태’인 건 법·제도의 감시가 헐겁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법은 ‘안전보건관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세부 기준은 사실상 없다. 안전관리 절차·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담은 매뉴얼이 2022년부터 시행 중인데 ‘간접 준용’에 그치는 탓에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매뉴얼 내용에도 오류가 있다. 법적으로 ‘건설공사발주자’인 경우가 더 많은 발굴허가신청권자를 ‘도급인’으로 기재했다. 문화재청은 류 의원실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발굴허가신청자를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으로 구분해 산업안전보건법의 조치 의무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매장문화재법이 규정하는 안전보건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류 의원실이 문화재청에서 받은 ‘최근 5년 한국문화유산협회 안전교육 내역’을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민간 발굴조사기관 128곳 중 5년간 매년 안전교육을 받은 기관은 7곳에 그쳤다. 안전교육 수료가 ‘0건’인 기관은 26곳, ‘1건’인 기관은 28곳에 달했다.
문화재청이 사고 내용 파악을 노동부 조사가 아니라 발굴조사기관의 ‘자율 보고’에 의존한다는 점도 문제다. 2021년 8월 폭풍으로 천막이 무너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경북 고령 박곡리 현장 사고에서 발굴 기관은 산업재해조사표도 제출하지 않았다. 대다수 기관은 장부에 반드시 별도 기록(계상)하도록 돼 있는 안전관리비도 ‘기타운영비’에 녹여 기재했다.
임금 지급 같은 기초노동질서 위반도 심각했다. 류 의원실이 노동부에서 받은 ‘발굴조사기관 근로감독 현황’을 보면, 2018년~2023년 8월까지 5년8개월간 총 177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이 발견됐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 위반(30건)’ ‘취업규칙 관련 법 위반(22건)’ ‘연장·야간·휴일·휴가 관련 위반(22건)’ ‘퇴직금 등 미지급(18건)’ ‘임금체불(15건)’ 등 기초적인 노동법 위반이 다수였다. 근로감독에서 잡힌 임금체불액만 55억7218만원에 달했다.
‘4대강 사업’ 이후 영세 발굴조사기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관리·감독이 느슨해졌다. 2008년 문화재청은 발굴조사기관 설립기준을 ‘기본재산 3억원 이상’에서 ‘기본재산 5000만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2007년 72개이던 조사기관은 2008년에 135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는 171개 기관이 있고 절반 이상인 105곳이 민법에 근거한 민간 비영리법인이다.
원인·해답 다 알고도…“이제는 대책 필요”
문화재청은 이미 문제의 원인과 해답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충북대 산학협력단이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연구용역을 받아 2021년 8월 제출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안전관리 매뉴얼 및 체계정비’ 보고서는 “발굴 현장의 주요 중대 산업재해는 대체로 굴착 기울기 미준수 또는 사면 붕괴 방지 조치 미실시로 발생한다”며 “정부 산재 예방 대책 강화로 문화재청도 매장문화재법을 개정했지만 구체적인 안전관리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매장문화재법 하위법령 개정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안전관리 관련 사항을 문화재청장이 고시하도록 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교육기관을 통한 안전교육 방안을 제안했다. 발굴참여인력의 안전관리 업무 범위를 명시하고 안전관리계획서 구체적 내용을 보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대안은 현행 법령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매뉴얼 개정만 있었다. 보고서가 제시한 위험요인들은 이후 사고에서도 계속 나타났다.
류 의원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이 기본적인 노동관계법도 안 지키고 안전보건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없다”며 “발굴조사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하위법령 개정 및 신설, 관련 지침 신설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류 의원은 “문화재청이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기관 운영 실태와 문제점,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종합 계획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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