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디엘이엔씨의 8번째 죽음…단톡방서 드러난 ‘책임 떠넘기기’
"오늘 오전 10시 10분쯤 부산 연제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2023.8.11)"
딱 두 달 전 기사입니다. '공사현장에서 20대 노동자의 추락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봤다면 왠지 기시감이 드는, 그래서 가볍게 넘기기 쉬운 기사일 겁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 20대 노동자, 94년생 고 강보경 씨에 대한 것입니다. 사고 당일, 강 씨가 숨진 그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 ① 8월 11일 오전 10시, 부산 연제구
2023년 8월 11일,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부산 연제구.
그날 오전 10시쯤, 거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레이카운티' 아파트 공사현장 6층에서 29살 강보경 씨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아파트 6층이면 높이가 20미터쯤 됩니다.
이 공사의 도급인은 옛 대림산업이었던 DL E&C, 수급인은 창호 등을 제공하는 KCC였습니다. 강 씨는 원청 DL E&C의 하청업체 KCC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오후 2시 24분, 중대재해처벌법 소관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ㅇ 재해자: 사망 1명(하청, 남, 29세, 한국인)
ㅇ 사고개요 : 아파트(6층) 창호 교체 작업 중 창호와 함께 1층 바닥으로 떨어져(20m) 사망
이 사고개요에서 핵심은 '창호 교체 작업'입니다.
■ ② 8월 10일 오전 9시 6분, 8월 11일 오전 7시 43분 단체 대화방
사고 만 하루 전인 10일 오전 9시쯤, DL E&C와 KCC 직원 등 23명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서 DL E&C 소속 직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고가 난 아파트 내부 사진을 보면 오른쪽 거실 중앙 창문에 금이 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왼쪽엔 교체용 새 유리창이 비스듬하게 서 있고요.
추정컨대 원청인 DL E&C 직원이 현장을 돌아다니다 이를 발견했고, 하청업체인 KCC에 파손된 유리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인 마루 시공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DL E&C 측이 요청한 교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다음날 오전 7시 43분, DL E&C 직원은 단체 대화방에서 다시 말합니다.
그리고 2시간 반 뒤, 3인 1조로 창호 교체 작업을 하던 강보경 씨가 창호와 함께 6층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 E&C 현장에서 발생한 8번째 사망사고입니다.
노동 당국은 강 씨에겐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대도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안전고리를 걸 수 있는 앵커(anchor)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업체 "요청과 지시는 유리 운반 작업만"
업체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원청과 하청업체의 공식 입장에서 공통 분모가 보이시나요? 바로 '유리 운반 작업'입니다. '창호 교체 작업'이 아니라요.
DL E&C 측은 사고 '당일' 요청은 유리 운반 작업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11일 유리를 교체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하청업체인 KCC가 임의로 작업을 해 사고가 났다, 그래서 적절한 안전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체 대화방을 통해 사고 당일은 아니지만 바로 전날 유리 교체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KCC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업자에게 유리 운반 작업 이외에 A/S 작업을 지시한 내용은 없다." 즉, 우리가 작업자에게 지시한 건 유리를 옮기라는 요청뿐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두 업체가 강조하고 있는 건, ' 우리는 유리만 옮기라고 했는데 고인을 비롯한 작업자들이 임의로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났다' 는 겁니다.
두 업체의 입장대로라면, 강 씨는 창호 교체 작업 지시도 없었는데(전날은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임의로' 작업을 하다 아파트 밖으로 떨어지는 창호와 함께 6층 아래로 추락한 겁니다.
상식에 바탕을 두고 취재를 하는 기자로서는 당혹스러운 해명입니다. 해당 가구 창호의 유리가 깨져서 그 집 거실에 유리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상급자는 전날 "최대한 빨리 교체" 해달라고 했고, 사고 당일에는 "치워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때 치우라는 말은 이 유리를 다시 가구 밖 어딘가로 옮기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깨진 창호를 빨리 교체하라는 뜻일까요?
어떻게 회사에서는 '당일에는 교체하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 해석하기 어려운 해명입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도 "기업은 사고가 터지면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기업간 입맞추기라도 이뤄지면 책임 소재를 밝히기도 어려워지는 만큼 정부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박사까지 하다가 취직을 앞두고 있었어요, 내년에"
고 강보경 씨의 유족들은 지난 4일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업체 측에 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강 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그날 이후 매일 DL E&C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학원생이었던 강 씨는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누나 강지선 씨는 인터뷰에서 강 씨를 "어머님을 자기가 모시겠다는 생각이 너무 센 아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아버님이 없다 보니까 어머님이 최우선이었고, 어머님을 자기가 모시겠다는 생각이 너무 센 아이였어요. … 그러다 보니까 급식소 알바를 짬짬이 하면서 스스로 장학금 받아가면서 대학교를 다니고, 바로 또 나노공학으로 석사과정 들어갔거든요. 거기서 한 2년 밤낮으로 일을 했고요. 그리고 박사까지 하다가 취직을 앞두고 있었어요, 내년에. 이제 취직을 하면 어머니 모실 수 있다 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이 터졌죠. (2023.10.10 KBS 인터뷰 중)"
누나와 함께 인터뷰를 마친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희 취재진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잘못 했다고 말 한마디 없는 거예요. 말 한마디라도 하면 안 좋겠습니까. 있는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거예요. ...(중략)...자식도 갔는데 내가 산들 뭐하겠어요. 정말 (그 회사 높은 사람들) 뺨을 좀 때리고 싶어요.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지만 뺨, 뺨을 때리면 제가 감옥 살겠지요. 그것도 좋아요."
내일(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는 DL E&C 마창민 대표 이사와 KCC 차승열 ESH 위원장이 참석합니다. 94년생 대학원생 보경 씨가 숨진 지 62일째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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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기자 (nar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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