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가자지구 주민들 “안전한 곳이 없다”…EU‧유엔 “전면봉쇄 반대”

최서은 기자 2023. 10.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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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현장에서 한 남성이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대피시키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교전이 수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가자지구 주민들은 공습과 봉쇄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무참히 희생되고 있다. 참혹한 전쟁의 피해는 이번에도 역시 죄 없는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11일(현지시간) BBC, AP통신 등 해외매체들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과 전면 봉쇄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가자지구 주민들의 참상을 전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발생한 지난 7일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집, 학교, 병원, 통신 회사, 도로 등 민간 시설과 필수 시설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하마스 매체를 인용해 “가자지구의 유일한 발전소가 멈춰 전력공급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날까지 어린이 260명을 포함해 950명 이상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5000명에 이른다. 희생자의 상당수는 민간인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전쟁에 온 가족이 집 안에서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가자지구의 리말 지역에 거주하는 모하메드 아부 알 카스는 어린 딸을 안고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며 “노숙자가 됐다. 더 이상 쉴 곳도, 일할 곳도 없다”고 BBC에 말했다. 이어 “내 집과 식료품 가게도 이스라엘군의 표적이냐”면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자지구에 사는 40대 남성 압둘라 무슬레는 AP통신에 “나는 미사일이 아니라 장난감을 판다”면서 “가자지구를 떠나고 싶다. 집도 직장도 다 잃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UPI연합뉴스

유엔에 따르면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6만3000명 이상이 피란민 신세가 됐다. 365㎢ 면적에 약 23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하마스의 공습 이후 이스라엘군은 4500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해 1300개 이상의 목표물을 타격했다. 국제법으로 보호되는 유엔 건물도 파괴됐다. 과거와 달리 이번 공격에는 민간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전 경고도 없었다.

가자지구의 한 언론인은 “가자지구에는 지금 안전한 곳이 없다”며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언론인 3명이 사망했고,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정말로 내 목숨이 두렵다”고 말했다.

병원과 의료시설, 구급차도 피해를 입었다.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지만, 의사들도 공습으로 인해 수술을 중단하는 등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 최대 병원의 한 의사는 워싱턴포스트(WP)에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본 상황 중 최악”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의사 역시 “병원 인근에서 일어난 공습으로 창문이 날아가고 신생아실 천장이 무너졌다”며 “반복되는 공습으로 인해 안전한 병원은 없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대변인은 “가자지구의 병원들은 억압적인 포위 공격으로 인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로 인해 의약품, 의료 도구 및 연료가 크게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자지구의 의료 활동을 살리기 위해 모두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긴급 대응 요원들이 부상당한 어린이들을 병원에 데려오고 있다. UPI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 조치로 물, 식량, 연료, 전력 등 생계를 위한 필수품도 끊기면서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전화와 인터넷도 끊겼다. 가자지구 주민 와드 알 무그라비는 “21세기에 전기와 물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냐”면서 “우리 아기의 기저귀도 떨어지고, 우유도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 내 아이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냐”고 호소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사이의 주요 통로인 에레스 교차로는 폐쇄됐고, 이집트와의 유일한 교차로이자 가자 주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라파 통행로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폐쇄되면서 탈출이 막혔다. 폭격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식량과 전기도 없는 곳에 사실상 갇힌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연합(EU)과 유엔 등 국제기구는 가자지구 전면봉쇄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0일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이는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을 준수한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면서 전력 및 식료품 공급 등은 중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성명을 통해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 공급을 막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위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되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여성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곳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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