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개찰구 통과 때 “어르신 건강하세요”...어르신들 뿔났다

대구/노인호 기자 2023. 10. 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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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는 거 표시나게 해 망신 주나” 반발
대구는 도입 5일만에 잇딴 항의에 중단
서울지하철 ‘어르신’ 빼도 안돼 설문까지
부산은 “감사합니다” 대전은 까치소리

대구에 사는 김모(70)씨는 지난달 중순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역무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로우대권을 뽑아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신기해서 한참 지켜봤더니 젊은 사람들이 지날 때는 그냥 ‘삑’ 하는 소리만 들렸다. 순간 불쾌감을 느낀 김씨는 역무원을 찾아 “이게 뭐하는 거냐. 늙었다는 거 표시나게 해서 망신주는 거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그는 “지하철 카드를 찍을 때마다 앞서 가던 사람들이 뒤돌아 쳐다보곤 한다”며 “주변 친구들도 지하철 탈때마다 불쾌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어르신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 /뉴스1

65세 이상 경로우대 승객들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나오는 “어르신 건강하세요” 멘트가 논란이다.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는 동시에 젊은 사람들의 부정승차를 막겠다며 도입했지만 오히려 어르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항의가 이어지자 지하철공사 측은 멘트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6월 서울지하철에 경로우대 승객 안내 멘트를 처음 적용했다. 기존에는 ‘삐’소리와 램프 색깔로 경로우대 승객을 구별했는데, 여기에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 멘트를 추가한 것이다. 3개월 가량 강남역, 광화문역, 서울역 등 승하차 인원이 많은 10개 역에서 시범운영한 뒤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반발로 시범실시 20여 일만에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뺐다. 그냥 “건강하세요”로 수정해 내보냈다. 일부 어르신들이 “낙인찍기하느냐” ”공짜로 태워준다고 생색내느냐” 등의 항의성 민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최근까지 안내 멘트 수정을 위해 시민 설문조사를 벌였다. “경로우대카드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천천히 통과해 주세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을 보기로 제시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경로우대 음성 서비스를 시범실시한 결과 우대용 카드부정사용 감소효과가 5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거부감이 없는 멘트를 잘 선정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대전도시철도 대전역 발권기에서 한 어르신이 우대권을 발권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대구지하철도 지난달 11일부터 어르신 무임승차 때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안내멘트를 내보냈다가 5일 만에 중단했다. 도입 이후 하루 평균 5건 이상의 어르신들 항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대구교통공사는 안내 멘트를 아예 없애고 기존처럼 ‘삐’소리만 나도록 변경했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어르신 공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동시에 부정승차 예방 효과를 누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어르신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시행하는 것은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해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지하철들도 노인 등 무임승차 고객을 따로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지하철은 “감사합니다”로, 대전지하철은 ‘까치울음소리’로 일반 유료 승객과 차이를 두고 있다. 광주지하철만 일반 승객과 구분 없이 ‘삐’소리만 나도록 운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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