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노벨상도 혁신이 필요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10월 2일부터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들이 차례로 공개됐다.
생리의학상은 코로나19(COVID-19) 펜데믹의 종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한 카탈린 카리코(헝가리)와 드류 와이스만(미국)에게 돌아갔다.
아토초(atto second, 100경 분의 1초) 펄스를 개발한 피에르 아고스티니(프랑스), 페렌츠 크라우스(헝가리), 앤 륄리에(프랑스)가 물리학상을 받았고 양자점(quantum dot) 기술을 개발한 모운 바웬디(미국), 알렉세이 에키모프(러시아), 루이스 브러스(미국)가 화학상을 수상했다.
● 전통을 이어가는 ‘헝가리 현상’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 2명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눈길을 끈다. 사실 헝가리는 노벨상 강국이다. 음극선관의 특성을 밝혀낸 필리프 레나르트가 1905년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모두 13명의 헝가리 출신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다. 문학상과 경제학상도 받았다. 970만 명의 인구를 고려하면 일본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다.
헝가리는 발명의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루빅스 큐브(Rubik’s cube)라는 장난감도 헝가리의 건축과 교수였던 에르뇌 루비크의 발명품이다. 헝가리가 20세기 초에 많은 수의 과학자‧수학자‧문학가를 집중적으로 배출한 것을 ‘헝가리 현상’(Hungarian phenomen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있던 때부터 학생들의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다.
생리의학상의 카리코는 헝가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계약직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mRNA를 의료용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mRNA 연구에 끈질기게 매달려서 결국 백신 개발에 성공한 그녀의 삶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역시 헝가리 출신으로 물리학상을 받은 크라우스는 오스트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독일의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 수상자도 2명이나 나왔다. 생리의학상의 카리코와 함께 물리학상을 받은 륄리에는 1903년의 마리 퀴리(방사선 발견), 1963년의 마리아 괴펠트-마이어(원자핵의 껍질 구조), 2018년 도나 스트리클런드(고강도 레이저), 2020년 안드레아 게즈(은하수 중심의 블랙홀)에 이어 역대 5번째 여성 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 노벨상도 혁신이 필요하다
1901년에 시작된 노벨상은 이제 123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세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동차‧기차‧항공기가 일반화되었고, 정보화 혁명이 일어났고 이제는 초지능‧초연결‧초융합의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세기에 정립되기 시작한 현대 과학과 기술의 지형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과학의 영역이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었고 연구의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노벨상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노벨상의 시상 분야가 물리학‧화학‧생리의학으로 한정된 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심각하다. 이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룩된 과학 발전의 현실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 환경‧컴퓨터‧로봇공학‧인공지능(AI) 등의 새로운 과학 분야에도 노벨상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물리‧화학‧생리의학의 구분도 애매해지고 있다. 특히 화학의 경우가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노벨 화학상의 수상 업적은 모두 화합물의 합성‧분석‧확인과 직접 관련된 것이었다. 새로운 합성 방법의 개발, 화합물의 물리‧화학적 특성 연구, 새로운 분석 방법의 개발 등에 관한 업적은 물리학이나 생리의학의 업적과는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물론 현대 생명과학의 핵심인 DNA와 RNA도 화학적 특성을 가진 ‘화합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는 1962년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89년 ‘RNA의 촉매성질’을 발견한 공로로 시드니 알트만과 토머스 체크가 ‘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명과학‧환경과학‧물리학이라고 여겨지는 수상 업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화학상의 수상 업적에 ‘DNA‧ATP‧리보좀‧생물고분자‧세포막‧단백질‧진핵전사‧수용체’는 물론 ‘준결정‧현미경’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화학적 업적’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결국 2020년에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A.다우드나가 ‘유전자 편집 기술 개발’의 공로로 ‘화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올해의 화학상 수상 업적인 ‘양자점’도 물리학상의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변화가 화학의 정체성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통적인 화학의 탐구 영역인 ‘물질’의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화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벨 화학위원회’의 구성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는 생명과학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위원의 비중이 50%로 늘어났다고 한다. 노벨 화학위원회가 ‘화학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변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수상자의 수를 최대 3명으로 제한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상자의 숫자 제한 때문에 억울하게 노벨상을 놓치는 과학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수상 업적에 대한 논란도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다. 수상자 선정의 공평성은 처음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받지 못한 과학자가 적지 않다.
일본은 지금도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토시 기타사토가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여성 과학자에 대한 성차별 문제도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로절런드 프랭클린이 대표적인 예다.
훗날 수상 업적이 엉터리로 밝혀지기도 했고, 1949년 안토니우 모니스의 전두엽 절제술처럼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시술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우리의 노벨상에 대한 관심
매년 10월이 다가오면 노벨상 증후군을 앓게 된다. ‘올해는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전화 때문이다. ‘우리가 노벨상을 받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 정도의 질문도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결국에는 ‘도대체 우리 과학자들을 뭘하고 있는 거냐’에 이르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 과학기술계의 성과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은 옹색한 변명이 돼버린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랬다.
우리 사회가 현대 과학기술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극심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가 과학자에게 기대했던 것은 노벨상이 주어지는 ‘과학’이 아니었다.
남의 기술을 베끼고 흉내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산업화 기술’을 서둘러 개발하라는 과학자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가 놀라는 수준으로 성공했다. ‘한강의 기적’과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그 결과다.
이웃 일본이 노벨상을 연이어 수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사정이 달라졌다. ‘축구’를 잘해야 한다는 명령을 성실하게 따른 과학자들에게 갑자기 축구가 아니라 ‘하키’를 잘하지 못했다고 탓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반세기의 투자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오라는 요구는 명백하게 과도하고 지나친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너무 달랐다. 아무도 노벨상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벨상이 계절이 돌아온 사실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다. 해마다 수상자를 족집게처럼 예측해준다는 클라리베이트(Clarivate)의 소위 ‘후보’ 명단에 우리 과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노벨상에 대한 무관심이 어쩌면 ‘약탈적 이권 카르텔’로 지목된 과학자들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 때문일 수도 있다. 연구개발비와 관련된 ‘이권’의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는 과학자들의 심정은 도무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과학’이 아니라 ‘기술’에 투자를 했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는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던 때가 그립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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