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가게가 군사 표적이냐"…국경없이 커지는 민간인 피해

김희정 기자 2023. 10. 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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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전쟁] 가자지구 초토화·의료시스템 곧 붕괴, 20만명 떠나…
하마스 대원들 침대의 아기까지 살해, 이-팔 양측 민간인 피해 확산
[가자지구=AP/뉴시스] 1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주택 건물 잔해 속에 갇혔던 소녀를 구조하고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으로 하마스 고위 간부 2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2023.10.11.

"대체 어디로 가야하나."

가자 지구에도 이스라엘에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나흘이 지나면서 이-팔 양측의 민간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양측의 사망자는 이번 사태 이후 2000명이 넘는다.

9일 밤~10일 새벽(현지시간) 사이 끔찍한 폭발음이 가자 지구를 뒤흔들면서 남서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거의 끊기고 기반시설이 손상됐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가자 지구는 지진을 방불케 하는 피해 규모에 잔해와 깨진 유리, 끊어진 전선이 사방에 널려있다. 가자 시티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리말의 주민들은 순식간에 노숙자가 됐다.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 규모는 20년 만에 최악이라고 BBC는 전했다.

[가자지구=AP/뉴시스] 막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위성 사진에 1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주거 지역 건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2023.10.11.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는 모하메드 아부 알 카스는 딸 샤드를 안고 "모든 것을 잃었다. 건물 아래 식료품 가게는 파괴됐다"며 "더 이상 우리를 위한 쉼터도, 일할 곳도 없다"고 절망했다. 그는 "내 집과 식료품점이 군사적 표적이냐"고 이스라엘 군을 향해 반문하며 이스라엘 군이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보복 공습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마스 고위관리 두 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약 300명이 사망했고 그 중 3분의 2는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수년 만에 가장 치명적 공습이었다. 이날 오후 가자시티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밀집지역인 자발리아 난민캠프에서만 최소 15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사령관의 자택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밝혔으나, 인근 시장과 주택에 있던 사람들이 희생됐다.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이후 가자지구의 전체 사망자는 어린이 260명을 포함해 현재 900명에 달한다. 부상자는 4500명에 달한다. 가자 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해 가자 지구의 모든 공급을 차단하고 '완전한 포위'를 명령하면서 220만명의 주민들이 식량, 연료, 전기,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가자지구 의료 시스템은 1주일 이내 붕괴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뉴욕=AP/뉴시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비난하는 한편 민간인 희생을 초래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우려를 표했다. 2023.10.10.

지난 7일 이후 처음 문을 연 가자 지구 최대 슈퍼마켓에는 전쟁이 오래 지속될 것을 두려워하는 주민들이 가능한 많은 식량을 사려고 몰려 들고 있다. 가자 지구의 채소·과일은 대부분 남쪽에서 재배되는데 연료 부족으로 타지역 운송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경을 맞댄 이집트에서는 이 지역으로 식량 등 구호품이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다. 가자 지구에서 이집트로 탈출하는 길도 막혔다. 보통 하루 400명의 출입이 허용되지만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측 출입문이 파괴돼 모든 출입이 중단됐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 지구에서 총 20만명이 공습 두려움으로 집을 떠났다. 이들 대부분은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로 피신했다. 일부 가자 주민들은 지하실로 피신하고 있으나 건물이 무너질 경우 갇힐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다. 9일 저녁 한 지하실에 약 30가족이 갇히기도 했다.

[가자지구=신화/뉴시스] 1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발생한 양측 사망자 숫자는 최소 210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2023.10.11.

민간인에 가해진 잔학 행위는 이-팔 양쪽에서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 측에선 하마스의 공격에 지금까지 1200명이 사망했고 무장세력에 의해 100~150명의 인질이 국경을 넘어 가자지구로 납치됐다. 이들 대부분 민간인이다. CNN은 억류된 인질 중 최소 4명이 이미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10일 오전까지 전투가 지속된 이스라엘 국경마을 크파르 아자의 키부츠에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집을 불태우고 침실의 아기를 포함해 가족을 도륙한 잔인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BBC에 사망자 중 일부는 참수당했다고 언급했다. 이스라엘 남부도시 아시 켈론의 주민들은 이전의 로켓 공격에 이어 가자 지구로부터 더 많은 무장세력이 건너왔다는 경보 이후 대피 지시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국경을 넘은 또 다른 총격전이 있었고 시리아에서 포탄이 발사된 후 추가 대응을 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수석 고문 마크 레게브는 "하마스가 이 전쟁을 시작했고 우리는 이 전쟁을 우리의 방식대로 끝낼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인구 구조를 감안하면 미국의 9/11 테러보다 심각하다.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 전체가 이스라엘을 공격해도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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