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중국 서빙로봇과 손 놓은 정부[신보영의 시론]
전세계 AI경제 선점 경쟁 가열
中에 잠식된 韓 서빙로봇 시장
정부는 中 로봇에 보조금 혜택
가격 왜곡과 시장 교란 이중고
신냉전 격화로 자국시장 우선
보조금철폐 및 관세부과 필요
인공지능(AI) 경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챗GPT 출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에 이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도 뛰어들면서 선점 경쟁이 뜨겁다. 19세기 말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AI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주요국 정부의 표준 경쟁(문화일보 9월 19일자 1면 참조) 역시 달아오른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인권 문제를 포함한 ‘AI 권리장전’ 청사진을 제시한 데 이어 유럽연합(EU)과 영국도 ‘AI 7대 원칙’ 등 규범 마련에 나섰다. 정부도 지난 9월 말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하면서 선제적 표준 마련 작업에 돌입했다.
규범·표준 경쟁과 함께 AI 경제를 결정지을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묶었던 세계화의 퇴조와 이를 대체하는 신(新)냉전식 경제 구조다. 미·중 공급망 경쟁 속에서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국제정치 혼돈 속에서 경제질서 역시 편 가르기 가속화가 불가피하다. AI 경제는 양분화한 세계에서 잉태된 셈이다. AI 개발·활용을 둘러싼 경쟁 역시 이 틀에서 당분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AI를 둘러싼 경제생태계가 복잡하게 펼쳐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미래를 미리 가늠하게 해주는 대표적 사례가 있다. 바로 국내 ‘서빙로봇’ 시장이다. 낮은 단계의 AI가 적용되는 초기 산업으로, 한국로봇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서빙로봇 매출액 규모는 3701억 원, 약 1만4000대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보급된 서빙 로봇도 5000여 대에 달한다. 올해는 1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 규모도 5억3000만 달러에서 2026년에는 1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문제는 2022년 말 기준 국내 서빙로봇의 70%가 중국산이라는 데 있다. 중국산 서빙로봇은 한 대당 1000만∼3000만 원으로, 한국산에 비해 최대 20% 정도 저렴하다. 한국은 일본·미국·중국 등에서 부품을 수입하지만, 중국은 자국산 부품을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 비용이 낮다. 또, 중국은 2015년부터 개시한 ‘중국 제조 2025 계획’에서 로봇을 10대 핵심산업으로 선정, 서빙로봇 구매자는 물론 제조업체에도 투자금의 10%를 환급해주고 매출의 2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가 이미 중국 내에서 보조금을 받은 중국산에도 공급가격의 70%, 최대 1500만 원까지 보조금을 또다시 지원해준다. 이를 악용한 중간 유통업체가 구매자에게 일부 리베이트를 돌려주는 등 시장 교란도 심각한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대책이다. 지난 9월 21일 열린 업계 간담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국산과 중국산 차별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중국의 직접적 보조금 지급이야말로 WTO 보조금 협정 금지 사항이다. EU는 지난 7월부터 이중 수혜라는 이유로 중국을 겨냥한 역외보조금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산 서빙로봇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미국은 관세 25%를 부과한다. “한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보다 로봇 보급을 우선시하면서 중국산 서빙로봇이 득세하는 데 한몫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지적이 뼈아프다.
국내산업 보호 장치가 절실하다. 일단 ‘이중’ 보조금 철폐를 통해 국민 세금으로 중국산 서빙로봇 업체를 지원하는 행위부터 중단해야 한다. 역외에서 보조금을 받은 제품은 총액을 고려해 국내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다. 중국의 무차별적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서빙로봇에 사용되는 중국산 배터리 원산지를 제한해야 한다. 관세 부과도 필요하다. 동시에 갈수록 분화하는 글로벌 경제구조까지 감안해 AI를 포함한 첨단산업에 대한 포괄적 지원 방안을 다시 고민할 때다. AI를 활용하는 ‘테스트 베드’인 서빙로봇 시장에서부터 주도권을 잃는다면, AI 경제에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의 글로벌 경제 질서가 부상하는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첨단산업에서 자국기업 보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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