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출시된 RSV 백신...국내 개발 어디까지
최근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미국 화이자, 프랑스 사노피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잇따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을 출시하고 있다.
RSV는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감염되면 콧물, 열, 기침, 비충혈, 인후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영유아나 고령자에게는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 같은 보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16만 명이 RSV로 사망하며 특히 5세 미만 영유아는 이 바이러스로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고열, 염증 등을 치료하는 대증요법에 그쳤던 RSV의 감염, 또는 중증화를 예방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이다. 특히 고령자와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감염질환을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백신 도입 계획이 당장 없어 아쉽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아렉스비(Arexvy)’는 RSV 백신 중 가장 먼저 출시됐다.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판매 승인 받았다. 같은 달 간발의 차이로 화이자 ‘애브리스보(Abrysvo)’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사노피와 아스트라제네카는 24개월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베이포투스(Beyfortus, 성분명 니르세비맙)’를 FDA로부터 사용 승인 받았다.
◇ 아렉스비, 애브리스보는 ‘가짜 단백질’, 베이포투스는 항체 넣어 면역반응 유도
RSV는 매년 10~12월 늦가을부터 이듬해 2~3월 겨울 끝물까지 유행하는 호흡기바이러스 감염질환이다. 건강한 성인이 감염되면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지나가지만, 고령자나 영유아가 걸리면 모세기관지염, 폐렴 등 하기도 감염으로 번져 생명이 위독해질 만큼 치명적이다.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특히 영유아들은 생후 2살까지 한 번씩은 다 걸리는 감염병”이라며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생후 6개월 미만 아기들이나 일부 6개월 이후 아이들은 모세기관지염, 폐렴 등이 진행될 위험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RSV가 독감이나 코로나19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RSV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는 항바이러스제가 백신이 없었다. 고령자와 영유아가 감염되면 가장 먼저 40도에 육박하는 고열이 나타나므로 주로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리거나,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발생했을 때 염증을 없애는 치료를 해왔다.
아렉스비는 RSV 바이러스가 가진 F 당단백질을 표적으로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원리다. 이 단백질과 닮은 ‘가짜 단백질’을 몸속에 넣으면 우리몸은 RSV의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면역세포들을 만들고 이를 기억한다. 향후 실제로 RSV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오면 우리 면역계가 재빠르게 작동해 감염을 예방하거나 중증화를 예방한다.
GSK에 따르면 60세 이상 성인 2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3상에서 아렉스비가 RSV 감염으로 인한 중증화(하기도질환)를 막는 효과는 82.6%나 됐다. 특히 당뇨병이나 COPD, 천식, 심부전 등 주요 질환자에서 효과는 94.6%나 됐다.
같은 달 화이자도 역시 ‘가짜 단백질’을 몸속에 넣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인 RSV 백신 애브리스보를 FDA로부터 승인 받았다. 역시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승인됐다. 화이자는 임신부가 맞을 경우 태아에게까지 면역력이 생긴다고 설명하며 임신 32~36주 여성이 맞을 수 있도록 추가승인 받았다. 또한 생후 6개월 이하 아기를 대상으로 FDA 승인 심사를 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계에서 두 거물이 한발 차이로 동일한 원리의 RSV 백신을 내놓은 셈이다. 지난 8월 GSK는 화이자를 대상으로 RSV 항원을 이용해 백신을 개발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권 4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F 단백질을 닮은 항원 단백질을 만드는 기술과, 이 단백질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이다. 화이자는 자체 기술로 애브리스보를 완성했다고 반박했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처럼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반으로 RSV 백신 후보물질(mRNA-1345)을 만들어 현재 FDA에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 RSV 바이러스의 F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정보(mRNA)를 지질 나노입자(LNP)에 넣어 만들었다. 지난 1월 모더나에 따르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예방효과가 83.7%에 이른다.
지난 7월에는 24개월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RSV 백신도 나왔다. 프랑스 사노피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으로 개발한 베이포투스를 FDA로부터 승인 받았다. 앞서 두 백신이 가짜 단백질을 넣어 면역계를 활성시키는 원리라면, 베이포투스는 RSV에 대한 항체를 직접 몸속으로 넣어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예방항체다. 니르세비맙은 재조합 DNA 기술을 이용해 차이니즈 햄스터 난소 세포에서 생산됐다. 이 약물은 체내에서 RSV 바이러스의 F 단백질에 들러붙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
FDA에 따르면 이 백신이 하기도 감염 등 중증화를 막는 효과는 75.71%나 된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12개월 미만 영유아 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결과, 베이포투스를 1회 접종한 아기가 RSV 감염으로 입원할 위험은 83.21%나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지난 4일(현지 시각) 늦가을부터 시작하는 RSV 유행에 훨씬 앞서 베이포투스가 승인됐지만 실제로 원활하게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버디 크리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CNN을 통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영유아의 RSV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이 나왔다”며 “하지만 아직 의료보험 등이 완성되지 않아 수많은 저소득층 아기들은 당장 올 가을에 맞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용이 너무 비싼 탓에 일부 아기들만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 국내에서는 유바이오로직스가 RSV ‘1호’ 백신 낼 듯
국내에는 아직 RSV 백신이 없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초인 1~3월 RSV 감염 환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배나 증가했다. 역시 RSV 백신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제약계 관계자는 “아렉스비와 애브리스보 모두 국내에서 임상 3상까지 마쳤기 때문에 이르면 내년 국내 도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영준 교수는 “베이포투스도 국내 출시된다면 아주 중요한 약이 될 것”이라며 “영유아들에겐 독감보다도 발생률이 높고 치명적일 수 있으니 무척 기대된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유바이오로직스가 RSV 백신 후보물질(EuRSV)을 개발해 동물실험 중이다. EuRSV는 RSV 바이러스의 F 단백질 항원과 리포좀 면역증강제가 혼합된 재조합단백질 백신이다. 체액성 면역(B세포 활성화)와 세포성 면역(T세포 활성화) 반응을 모두 극대화할 수 있다.
유바이오로직스 사업개발실 관계자는 “최근 EuRSV에 대한 여러 비임상(동물실험)을 통해 항원 특이적 IgG 항체가와 중화항체가 및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방어능을 확인했다”며 “백신유래질환(VAERD) 평가와 약리, 독성시험에서도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식약처에 19~80세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 시험계획 승인을 신청했다고 10일 밝혔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해당 백신 후보물질을 저용량 또는 고용량 투여했을 때 52주까지 유효성과 안전성 등을 시험할 계획이다. 임상 기관은 아직 미정이다. 유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자사 RSV 백신이) 이르면 2027년 이후 상용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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