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정율성 기념사업은 국가 정체성 부인... 중단하라"

광주광역시 "위법사항 해당 안 해" 권고 거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권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훈부가 광주광역시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율성 기념사업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과 흉상을 포함한 기념시설 철거 등 기존 사업들에 대한 이른 시일 내 시정을 권고했다. 광주광역시는 "기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사무이며 위법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11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율성은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적군으로 남침에 참여해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라며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기념사업은 헌법 제1조, 국가보훈 기본법 제5조,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 등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 광주 출신 음악가인 정율성은 1933년 중국에 건너가 항일 무장투쟁단체 의열단에 가입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39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팔로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고, 1945년 광복 뒤엔 북한에서 활동하며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6·25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 활동했고, 1956년 중국에 귀화했다.

보훈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18년 정율성에 대한 독립유공자 공적을 심사했으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고 △북한 정권을 지지한 행적이 명확하다는 등의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보훈부는 지방자치법 제184조를 근거로 광주광역시 등에 이를 즉각 중단하고 기존 사업에 대해서도 시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했다. 지방자치법 제184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자체의 사무에 대해 조언 또는 권고나 지도를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박 장관은 또 "지자체의 자율성은 존중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배치되는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의 설치, 존치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며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른 시정 명령을 즉각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법 제188조는 지자체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될 경우, 주무 장관이 서면을 통해 시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훈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에서 부로 승격된 이후 지자체 사무와 관련해 시정을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광역시는 박 장관의 기자회견 후 입장문을 내고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기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사무이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자치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처 장관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다"며 보훈부의 권고와 시정 명령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