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미로센터 ‘앵포르멜 회화 선구자 양수아’ 독일 초대전시
광주광역시 동구(청장 임택)는 ‘지역 안의 예술 스토리’로 남아있는 한국 앵포르멜 추상회화의 대표작가 양수아의 작품을 오는 10월 14일부터 24일까지 독일 뒤셀도르프 ‘PART 2 갤러리’에서 전시한다고 밝혔다.
< PART 2 갤러리 ‘양수아 초대전’ >은 ‘광주광역시 동구 미로센터’와 독일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PART 2 갤러리’가 함께 협력하여 추진하는 국제예술교류 사업의 일환이며 지정학적 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적 현상에 대한 내적 좌절과 저항으로 일관되는 양수아의 예술 사유와 태도, 예술가적 삶을 국외에 소개하는 첫 자리이다.
<강강수월래(1957)>를 포함한 구상 드로잉(10점), 추상드로잉(8점), 구상회화(7점), 추상회화(10점), 자화상(5점), 총 40여점을 선보이며 앵포르멜이라는 새로운 예술 표현 양식으로 한국의 시대적 아픔을 대함에 있어 양수아만의 자의적이고 선별적인 교차지점이 최소의 지정학으로써 유럽과 미국의 추상회화와는 다른 전후 미술로써 위치를 확인하고 그의 삶을 국내·외에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올해로 양수아 탄신 103년이며 본 전시는 양수아의 아들(나인갤러리 양승찬 대표) 소유의 유작이 대부분이다.
시대적 불안과 위기감, 정신적 고독과 함께 술에 의지하고 기행으로 찬란하게 살다 간 양수아(梁秀雅, 1920-1972) 화백은 1920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양회식(梁會式), 일본어 이름은 마쓰다 조지(益田讓治)와 요시모토 데이야(良本禮世) 였다.
삽화가를 꿈꾸던 소년 양수아는 일제 강점기 중농 집안 태생으로 소학교 시절부터 시모노세키에 유학하였으며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40년대 징집 문제로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화가가 되고자 가와바타(端川肅學校) 동경의 미술학원에 다녔다.
만주 시절에는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해방 직후 목포에 정착했으나 1950년 전쟁을 지리산 빨치산으로 치렀다. 이런 가운데 일본인 아내 아베 에스코(安部促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제자 곽옥남과 재혼하여 4남 1녀를 두었다. 목포와 광주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미술교육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 광주 미국문화원을 통해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 같은 새로운 예술사조에 대한 정보를 접하였던 그는 20세기 한국 역사의 중심에서 서구의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매개로 자유롭고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사하며 질곡의 시대를 예술로 맞서 살아낸 시대가 나은 예술가였다.
살아생전 24회의 개인전을 통해 6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 바 있으며 사실적 구상화와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비정형 회화 양식을 통해 저항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의 앵포르멜 양식 모두와 연결되면서도 한국 격동기의 독자적인 추상미술 형식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
새로운 예술적 사고와 표현이 중앙주도적이었던 것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과 다르지 않으나 양수아의 앵포르멜 회화만큼은 한국 현대미술의 원년으로 회자 되는 1957년보다 한해 앞서 비정형을 시작한 선구적 위치에 있으며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수용된 앵포르멜의 본원적·시대적 가치에 근접할 수 있는 지점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 거침없는 색채 사용과 선들로 하여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앵포르멜 작업들을 선보였다.
양수아 자신이 속한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와 시대적 체제로부터 저항하고자 했던 예술적 태도는 자의적인 수용과정을 거처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 앵포르멜의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되면서도 전근대적인 체제에 대한 개혁 의지와 함께 미술계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적 표현으로 분출되어 한국 앵포르멜은 형식 자체의 순수함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혁신을 열망하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양수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쓴 위증에 의하면 “양수아에게 있어 비정형 회화는 전 생애에 걸쳐 힘겹게 싸워온 한국 역사와 개인적 상흔을 직면함에 있어 작가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부조화 속에 자유의지로 새로움에 대한 열망으로 다가온다”고 표현했다.
양수아라는 존재가 중앙화단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58년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 주관)에 참여하면서 부터로 추정되며 당시 현대작가로 인식되는 것에 비해 그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구상으로 표현되는 예술 존재 방식보다는 추상적 표현을 자신의 본격적 예술영역으로 받아들이며 단계적 변화가 아닌 같은 시기에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표현하였으며 특히 그리는 대상 자체가 아닌 추상적 사고를 내면에 유배시켜 구상회화에 표현 하였다. 내향적인 성향은 깊은 자의식으로서 많은 자화상을 남기고 있다.
양수아에게 있어 예술창작은 술과 기행을 포함하여 1950~1960년대 남한의 파심즘 체제에서 오롯한 인생 자체이자 존재 이유였다. 양수아 자체와 그의 삶은 20세기 한국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태호 미술사가(명지대학교 명예교수)에 의하면 “많은 작품이 드러나 있지 않고, 예술적 완성을 이루지 못해 아쉬우나 짧은 인생에 비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앵포르멜 운동의 선구였고, 자유로운 내면과 예술세계가 다르지 않았던 양수아가 화가이자 미술교육자로 남긴 예술교육론과 비평적 안목에 관하여는 물론, 유작으로 남아있는 그의 작품들은 재평가 받아야 할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고 언급했다.
앵포르멜은 제1·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시작된 미술운동이며 인간의 실존에 주목하면서 원시적 세계를 동경하며 등장했다. 한국에서 앵포르멜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미술운동 차원에서 도입, 형성된 것은 1957~58년 무렵이며 6·25전쟁 후 국내의 사회적 상황이 전후 서구의 사회적 상황과 유사했다는 점에서 앵포르멜의 이념과 표현 방법이 쉽게 접목될 수 있었다.
다만 서구의 예술가들이 개인의 예술 표현으로 받아들인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집단적 태도로 드러났으며 서구에서 전개된 형식은 수용했지만 사유 방식은 미학적 동기 보다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표현방식으로 연계되면서 한국 앵포르멜만의 또 다른 해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지역 대표 작가 양수아 화백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뜻깊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안의 스토리로 남아있는 우리 지역의 예술가를 다시 한번 조명하여 국제적인 예술 도시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양수아 초대전을 기획한 ‘PART 2 갤러리’는 독일 최대 광역도시권인 라인-루르 지방 중심 도시인 뒤셀도르프에 기반을 둔 개인이 운영하는 상업갤러리이며 ‘2022년 미로 레지던시 리턴작가 Part’에 참여한 정영창 작가를 비롯하여 20여 명 이상의 작가들이 현재 소속되어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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