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세사기’ 일파만파…피해금액 이 정도일 줄이야
피고소인 부부 임대차 계약 1~2년 전 집중
피해자들 “설명 제대로 안한 중개사들도 고소 검토”
11일 경찰 및 지역 중개업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64건의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임대차 계약 규모가 커서 향후 피해 신고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차인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정씨 일가가 보유한 건물은 10일 기준 51개이다. 이 가운데 피해 가구수가 확인된 건물은 37개, 675가구다. 나머지 건물 14개의 가구수를 합치면 피해 세대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전세 계약금 총액이 파악된 건물은 11개로, 이들 건물의 계약금은 도합 약 333억원이다. 아직 구체적인 액수가 파악되지 않은 건물까지 합치면 총 전세계약금은 1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원 전세사기 의혹’ 사건의 임대인 정모 씨는 수원 팔달구·권선구 등지의 공인중개사 사이에서 소위 ‘잘 나가는’ 부동산 업자로 통했다. 정씨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던 2021년부터 지난해 사이 공격적인 투자로 하루가 멀다고 건물을 통째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 시기 정씨는 부동산 임대업 법인 18곳 중 대부분의 법인이 세워졌다.
정씨와 그의 아내 등 가족까지, 정씨 일가가 보유한 건물은 50여 개에 달한다. 대부분 수원 지역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정씨가 대표로 있는 여러 법인 중 대표 격인 수원시 팔달구 소재의 한 법인 사무실은 방문할 때마다 공인중개사로부터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 없었고,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정씨 물건을 취급한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정씨가 건물 매입을 본격화하기 전에도 소규모로 임대업을 했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올(All) 전세’, 즉 모든 물건을 전세로 내놔 우려를 샀다고 전했다. 근저당이 있는 건물을 모두 전세 계약하다 보니 ‘저러다가 크게 사고가 날 것’이라고 점치는 공인중개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려했던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반신반의했던 공인중개사들도 그제서야 정씨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씨의 자금 사정이 나빠진 이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 등 문제가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임대업 외에 정씨는 수원시 내에 식당과 카페를 여럿 차리면서 요식업도 활발히 했었으나, 하나둘씩 폐업해 다수 업체의 운영권이 다른 이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현재 정씨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피해 현황을 집계한 임차인은 “일부 건물에서는 계약 만기가 도래해 실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물의 총 근저당 금액 및 해당 은행 지점까지 확인한 곳도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집주인인 정씨 부부와 이들의 아들에 대한 피해 신고를 이어가는 한편 해당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들에 대해서도 고소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가 피해자들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작년 7월 7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오피스텔에 방을 구하려던 A씨는 당시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중개업소로부터 해당 오피스텔의 채권최고액이 44억4000여만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해당 건물은 1∼2층 상가와 3∼5층 주차장, 6∼12층 주거 공간으로 이뤄진 대형 건물이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A씨는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물었으나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를 믿은 A씨는 대출 1억을 포함한 보증금 1억3000만원, 월세 35만원에 계약을 진행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건물에 걸려 있는 채권최고액은 당초 설명의 3배에 가까운 114억여원이었다. 정씨가 건물을 3등분으로 나눠 3건의 근저당을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뒤늦게 해당 오피스텔이 ‘깡통 건물’임을 알게 된 A씨는 부동산중개업소에 항의했다. 부동산 측도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해당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설명을 잘못 드렸다면 저희의 잘못이 맞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6월 28일 마찬가지로 같은 오피스텔에 보증금 1억9000만원을 내고 전세 계약을 맺은 B씨 역시 건물 근저당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계약을 맺었다고 호소했다.
당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B씨에게 “집 주인이 수원에 건물이 많은 ‘큰손’이니 걱정 없고, 주인이 세금 몇 달 안 낸다고 해서 건물이 바로 경매에 넘어가는 일도 없다”며 “적어도 3∼4년은 지나야 벌어질 일이니 2년 계약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장담하듯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정씨의 건물 중 일부는 경매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B씨가 부동산중개업소에 항의했으나 계약을 담당했던 당시 직원은 이미 그만둔 뒤였다.
이러한 사례가 이어지자 피해자들은 정씨 측뿐 아니라 다수 계약을 진행한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도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계약을 진행했던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정씨의 매물이 보증금 미반환 상태로 이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업소 직원들이나 개인적 지인들 다수도 정씨의 건물에 전·월세로 살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문제가 불거질 것을 예상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흡했던 채권최고액 설명에 대해서는 등기부등본에 나온 내용을 충실하게 설명했지만, 이후 달라지는 정씨의 재무 상태나 기존 임차인들의 계약 연장 여부 등은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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