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이 하드보일드엔 탈출구가 없다…'화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어둡고 끈적하다. 매캐하고 지독하다. 마치 진창에 빠진 다리를 어쩌지 못해 발악하는 것만 같다. 어떻게든 벗어나려 하나 도무지 맘대로 되지 않는 몸은 이미 진흙을 뒤집어 쓰고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져 있다. 입 안까지 차들어온 오물은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게 한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화란'(10월11일 공개)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우울과 비애에 짜부라진 듯한 이 영화는 미화와 연민을 최소화 한 채 주어진 삶을 그저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어떤 이는 있는 힘껏 발버둥 치며 희망을 찾아 헤매고 또 어떤 이는 조용히 웅크린 채 작게나마 희망을 도모해보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란 걸 잘 알지 않느냐고 '화란'은 비웃는다. 이 하드보일드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화란'엔 성장이 없다. 물론 소년이 등장하고, 이 소년이 드디어 세상을 처음 맞닥뜨리며, 소년에게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 성장의 전형과도 같은 구도다. 그러나 유사한 설정을 가진 영화들이 흔히 담아내곤 하는 낭만적 성장기 같은 게 이 이야기엔 없다. '화란'은 수난기다. 삶은 고통이라는 것.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에 상응한 벌을 받느라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삶이란 원래 괴롭고 아프다는 얘기다. 치건은 그들이 사는 세계인 명안시를 여러 번 "좆같다"고 말한다. 치건은 연규에게 묻는다. "여기에 언제부터 살았냐." 연규가 답한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 치건 역시 그 "좆같은" 곳에서 나고 자랐다. 두 사람은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부모를 고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화란'은 로망스를 제거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건 겉으로 드러난 범죄 현상이 아니라 범죄에 내재한 마음의 양상이다. 오토바이를 훔쳐 되팔고 사채놀이를 하는 그들의 시시껄렁한 행각 안에 똬리를 튼 건 악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인생이라는 건 매번 난데 없이 튀어 나가 수중에 둘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현실을 그저 수용하는 것 말곤 없다는 것이다. 치건이 범죄 세계에 발을 들인 건 보스의 낚시줄에 귀가 걸렸기 때문이다. 연규가 치건 밑으로 들어간 건 연규의 대화를 치건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연은 없고 모든 게 우연인 세상. 치건은 연규에게 말한다. "해야 돼. 해야 되는 거야 이건." 의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 냉혹한 현실 인식에 브로맨스 같은 낯간지러운 말은 끼어들 수 없다.
'화란'은 소통을 믿지 않는다. 마음이 통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건 기대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화란'이 그리는 관계는 어굿나고 미끄러지다가 결국 멀어지고 돌이킬 수 없다. 연규와 중국집 사장이, 연규와 그의 아버지가, 연규와 완구가, 연규와 완구의 아들이 그렇다. 치건과 그의 아버지가, 치건과 보스 중범이, 치건과 부하 승무가 그렇다. 그리고 유사 부자 관계를 맺는 것 같았던 연규와 치건의 관계 역시 다르지 않다. 타인은 타인일 뿐, 타인을 이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이 영화가 정의한 세상이다. 그래서 연규는 대화 대신 해결을 선택하고, 치건은 오해를 푸는 대신 침묵을 택한다. 어차피 대화 불능과 오해는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고, 다른 한 사람은 차라리 죽어버린다.
'화란'은 개선(改善)을 기대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선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긍정을 찾기 힘들다. 이 시각은 위악이 아니라 역사에 기반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언제나 인간 삶을 지배해온 원리는 고통이고 우연이고 오해이지 않았나. 연규와 치건에게 폭력이 대물림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완구의 아들을 향한 연규의 선의는, 연규를 향한 치건의 진심 역시 전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으로 뒤바뀌고만다. 아마도 연규의 아비나 치건의 아비 역시 그들의 아버지에게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상속 받았을 것이다. 연규는 하얀과 함께 명안시를 떠난다. 그러나 무의미로 가득 찬 곳이 어디 명안시 뿐이겠는가. 두 사람을 태운 오토바이는 언제든 고장나 엎어져 버릴 것만 같아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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