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와인 향기와 국악의 풍류 그윽한 영동
(영동=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소백산 추풍령 자락에 자리 잡은 충북 영동에는 40여곳의 와이너리가 있다.
이곳은 밤낮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국내 주요 포도 산지로 꼽힌다.
포도, 와인과 함께 영동에는 국악을 접하려는 관광객도 많이 찾아온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한 명인 난계 박연(1378~1458)의 출생지인 만큼 전통음악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와인과 국악의 고장
서울역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대전역까지 이동한 뒤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영동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기 위해 지하보도를 건너가는데 양옆에 이색적인 조형물이 눈에 띈다.
포도 줄기, 와인병, 참나무통, 다양한 국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형상화한 부조 형식의 벽화가 늘어서 있다.
역시 와인과 국악의 고장답다.
역을 벗어나 차로 이동하다 보면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 지지대를 설치해 포도나무 줄기를 이어 만든 포도 터널이 나온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만나는 포도의 빛깔이 다채롭다.
검붉은 색깔, 붉은빛, 초록빛 등으로 다양하다.
손을 위로 뻗어봤지만, 포도알이 잡히지 않는다.
지상에서 꽤 높이가 돼 보였다.
이곳 포도는 당도가 높고 특유의 맛과 향이 일품이다.
포도로만 유명한 지역인 줄 알았는데, 도로에는 특이하게도 감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다.
포도와 함께 영동의 대표 작물 중 하나라고 한다.
감나무에는 연두색의 감이 몇 개씩 달려있다.
이색적인 풍경이다.
문화공간 영동와인터널
영동읍에 있는 영동와인터널은 와인을 주제로 한 문화공간이다.
420m 길이의 터널에 와인의 정의와 역사, 관련 유물, 포도 품종, 영동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종류 등을 설명해 뒀고 시음 코너도 마련했다.
일반적으로 색깔, 당분, 마셨을 때 입 안에 느껴지는 무게감, 저장기간 등에 따라 와인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 와인 제조 과정, 국가별 와인산업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는 관광안내사는 와인 시음 방법,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 음식까지 알기 쉽게 설명했다.
꽤 실속 있는 와인뮤지엄이라 할 만했다.
영동은 2005년 국내 유일의 포도·와인산업 특구가 됐다.
이곳의 포도는 전국 재배 면적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기후와 토양 등 자연환경이 좋은 덕분에 와이너리도 다양하다.
영동와인터널에는 홍시의 맛, 딸기와 자두의 향 등이 가미된 여러 와인이 함께 소개돼 있다.
3대째 운영하는 와이너리
영동에서 3대째 포도와 머루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컨츄리와이너리를 찾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도로 옆에는 군데군데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컨츄리와이너리 김덕현(41) 대표의 안내로 최근 새롭게 정비했다는 제조 시설을 둘러봤다.
김 대표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한 때가 1965년이라고 들려줬다.
포도주를 소량 빚은 것이 시작이 돼 아버지와 자신에게까지 3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1층에는 발효, 저온 숙성, 포장 등 제조시설을 갖췄고, 2층은 시음과 와인문화 체험 및 교육 공간으로 구성됐다.
김 대표는 와인을 제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이 같은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는 "지역별로 다양한 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양조장 탐방을 하는 분들이 늘어났다"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도로 근처에는 넓은 머루밭도 보였다.
알알이 맺힌 머루가 익어가고 있었다.
시음을 해 봤다. 한국에서 많이 생산하는 포도 품종인 캠벨얼리로 만든 '캠벨 스위트'는 무겁지 않고 달콤한 향과 맛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산머루 스위트'는 색이 더 짙었고, 어린 시절 맛봤던 머루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김 대표는 기후와 토양에 따라 재배하는 포도 품종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선호하는 맛도 외국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골의 정감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모토라면서 자연주의 와인을 지향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와인도 다양한 음식에 활용된다. 날씨가 더울 때는 탄산수에 레몬즙과 와인을 넣어 에이드 음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추운 지역에선 와인에 과일과 계피를 넣고 끓이는 뱅쇼를 만들 수도 있다.
영동에서는 와인을 활용한 소금빵을 선보인 적도 있다.
3대 악성 박연의 고향서 만나는 발자취
충북 영동은 국악과 인연이 깊다.
이곳에서 태어난 박연은 고구려의 거문고 대가 왕산악, 신라의 가야금 명연주자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힌다.
박연은 조선 세종 때 율관(악률의 표준을 정하기 위해 만든 12개로 된 관)을 만들고 편경을 제작했다.
2000년 완공된 난계국악박물관은 박연의 일대기와 업적뿐 아니라 국악기와 장단을 소개하고 세계의 민속악기도 함께 전시한다.
박연의 고향에 이러한 박물관이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박물관 근처에는 박연을 기리는 사당인 난계사도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 사이로 보이는 난계사가 푸른 하늘과 잘 어울려 보였다. 난계사에서 차를 타고 잠시 이동하면 옥계폭포를 볼 수 있는데, 노년의 박연이 자주 찾았다고 해 난계폭포로도 불린다.
체험촌 북소리에 몸이 들썩…국악기 제작현장서 감탄 절로
영동국악체험촌에는 북, 장구, 가야금 등 국악기를 경험해 보고 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 자리에 있던 타악기 강사가 시연을 보여줬다.
몇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도 북소리가 우람해 듣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을 울리게 하고 몸까지 들썩이게 했다.
송정례 강사는 "인원이 많을 때는 체험자 50~60여명이 북모듬 연주를 함께한다"며 "그 소리가 엄청나서 함께 있던 체험자들도 놀란다"고 전했다.
송 강사는 "가야금의 경우 30분 정도 체험을 하다 보면 짧은 동요를 연주할 수 있게 되는데, 체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인근에는 국악기 제작시설도 있다.
그중 타악기 공방에서 미니 장구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소가죽에 구멍을 뚫어 오동나무로 된 몸통에 연결한 뒤 줄을 위아래로 엮는 과정이다.
타악기 공방 이석제 대표의 안내로 실제 장구 크기의 몸통을 만들기 위해 나무 원목을 기계로 깎아내는 작업실로 이동했다.
작업실에는 기계음이 울리고, 나무를 깎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먼지가 가득했다.
원목을 몇 분 만에 깎아내는 작업자의 몸놀림에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함께 과정을 지켜보던 이 대표는 "순간순간 나무를 깎아내는 도구의 각도가 제대로 나와줘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국악, 국악기 제작, 국악기 표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험촌 맨 위쪽에는 2011년 세계에서 가장 큰북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천고(天鼓)가 버티고 있다.
소망과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북이라는 의미다.
북통 지름 6.4m, 무게 7t 규모의 천고를 직접 쳐 보니 그 소리가 땅을 울리는가 싶을 정도로 엄청났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국악 관련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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