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조 비리 잡겠다”며 만든 정부 신고센터, ‘사용자 불법’ 호소로 가득

구민주·김종일 기자 2023. 10. 1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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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7개월 간 1512건 신고통계 전수조사
‘노사 법치주의’ ‘건폭’ 앞세웠지만 신고 85%가 ‘사용자 부당행위’
윤건영 “노동자 삶과 직결된 문제…신고 내용 실질적으로 해결해줘야”

(시사저널=구민주·김종일 기자)

2월2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노조가 금품요구, 채용강요, 공사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뉴스1

고용노동부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내용의 85%가 사용자의 불법·부당행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앞세워 올해 초 신고센터를 개설했는데, 부조리 신고에 대한 방점이 사측에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시사저널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월26일부터 운영된 신고센터에 8월31일까지 총 1512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노동자(근로자)가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신고한 건수는 1294건으로 전체의 85%에 달했다. 피신고자가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 단체인 경우는 14.9%에 그쳤다. 

고용노동부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신고자와 피신고자 비율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신고 3건 중 1건은 '임금 체불' 때문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윤 대통령의 철학에 발맞춰 개설된 신고센터이지만, 정작 노동계와 시민사회 등에서는 신고센터가 '노조의 부조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고센터 출범 직전인 1월25일 근로감독관들과의 간담회에서 "폭행·협박, 부당하고 불투명한 노조 운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 포괄임금제 때문에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분들의 진솔한 제보를 기다린다"며 센터를 홍보한 바 있다. 

실제 노동부가 명시한 신고센터 운영계획도 노조의 부조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다. 운영계획에 명시된 '신고대상'에는 ①노조 활동 과정의 폭행‧협박 행위 ②노조 재정 부정사용 등 노조의 불법 행위 사례가 굵은 글씨로 강조돼 있다. 노동부 홈페이지에 마련된 신고 코너에도 '신고대상'에 노조 운영 및 회계 투명성, 노조 불법‧부당행위가 가장 앞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신고센터에 접수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면, 신고는 노동부가 강조해온 노조의 부조리가 아닌 사용자의 불법행위 등에 대한 시정 및 처벌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노조 차원의 집단적 신고도 아니었다. 자료를 검토해보면, 전체 1512건의 피해 신고 중 단 1건(노동자 단체)을 제외하면 모든 신고자는 개별 노동자였다. 

접수된 신고의 대부분은 사용자의 폭언‧폭행, 수당 지급 및 해고 과정에서의 부당행위가 주를 이뤘다. 올해 초 피해를 신고한 한 노동자는 사용자가 목을 조르며 위협을 가했다고 호소했고, 또 다른 노동자는 사용자가 전 직원 앞에서 지속적인 성희롱적 발언을 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전체 신고 3건 중 1건가량은 야근 등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임금을 체불해 발생했다. 

신고 처리 결과를 보면, '상담 안내 후 종결'이 전체 45.6%(688건)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신고 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이 아닌, 신고 접수 후 기본적인 상황 파악 과정에서 자체 종결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신고를 접수해 전화를 걸었을 때 신고자 측에서 '이미 해결됐다'고 말한 경우 등이 여기 포함된다"라면서 "익명 신고의 경우 신고 내용이 불명확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 신고 방법을 다시 안내한다. 이 경우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로 설명했다. 

신고 처리 결과는 '상담 안내 후 종결'에 이어 '신고 취하'(19.4%), '처리 중'(13.0%), '혐의없음'(8.9%)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개선 완료'(7.8%)나 '시정 완료'(2.5%), '사법처리'(1.0%), '과태료 부과'(0.3%) 등 실질적인 시정이나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모두 합쳐 약 10% 남짓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신고 처리 현황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기존방식 되풀이해선 포괄임금 오‧남용 못 막아"

노동부는 지난 2월2일부터 신고센터 내에 포괄임금 오·남용 신고센터'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 형태나 업무 성질상 추가 근무수당을 정확히 집계하기 어려운 경우 수당을 급여에 미리 포함하는 계약 형태다. 제도 취지와 달리 포괄임금제는 실제 노동 현장에서 '공짜 노동'이나 '야근 갑질'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어 노동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 요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포괄임금제 폐지는 노동 현장에 혼선을 빚을 수 있다면서 제도를 없애는 대신 보다 엄격한 관리‧감독을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포괄임금 오·남용 신고센터'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2일부터 8월31일까지 총 49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한 달에 70여 건에 이르는 수치로,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사용자가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게 신고의 주요 내용이었다. 

접수된 신고에 대한 노동부의 처리 현황은 '의심사업장 관리대상'으로 지정한 경우가 286건(57.8%), '관리 불필요', 즉 신고를 기각한 결정이 209건(42.4%)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의심사업장 관리대상으로 지정된 경우, 더 철저한 관리와 근로감독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포괄임금 오·남용을 방치한 기존의 감독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노동부는 포괄임금을 오‧남용해 온 사업장에 대해 즉각적인 처벌 대신 사후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을 내려왔다. 노동계는 노동부의 이런 행태가 노동자들에게 제때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충분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며 반발해 왔다. 신고센터를 통해 피해를 접수 받고, 이에 따라 감독에 착수하는 노동부의 현 대응 방식 역시 그간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건영 의원은 "당초 출범은 '노조를 잡겠다'고 만들어진 신고센터이지만, 실제 운영 결과를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현장이 얼마나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는지가 한 눈에 확인된다"라면서 "이제라도 삐뚤어진 노사 인식에서 벗어나 신고된 내용을 해결할 수 있게 법치주의를 세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윤 의원은 "노동부는 신고를 접수하는 형식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실효성 있게 신고센터를 운영해 나가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각별히 신경을 쓰고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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