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 위 워크?···걸으니 비로소 보이는 낭만과 풍경

해남=김세영 기자 2023. 10. 1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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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캐디, 워킹 골프 체험
“운동할 권리 돌려주자”
지능형 로봇카트도 재미
건강 챙기고 실력도 향상
본지 김세영 기자가 수동 카트를 밀면서 페어웨이를 걷고 있다.
[서울경제]

“따라와.” 기계한테 진짜로 말을 걸어도 되나 싶었다. 기우였다. “트래킹 모드~”라고 말을 하더니 강아지처럼 졸졸졸 뒤를 따르는 게 아닌가. 익숙해지자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부러 이리저리 방향을 꺾어 보고, 갑자기 달려도 봤다. 그래도 로봇 카트는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왔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잡종이지만 한없이 귀엽고 잘 따르던 그 ‘똥개’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오버랩 됐다. 덩달아 ‘워킹 골프’의 재미도 배가됐다.

대한민국 골프장에서 승용 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골프는 원래 걷는 게임이었다.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는 여전히 걷는 게 자연스런 분위기다. 당연히 프로 골퍼들도 걷는다. 한국에서 승용 카트가 필수가 된 건 골프장의 영업적인 측면을 고려한 결과다. 캐디 없이 2인 셀프 라운드를 즐길 때도 승용 카트를 타야 한다.

워킹으로의 회귀···“운동할 권리 돌려주자”

최근 국내 일부 골프장에서 분위기 반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워킹으로의 회귀’다. 땅끝 해남에 있는 파인비치 골프링크스는 워킹 골프를 장려하는 곳 중 하나다. 골퍼들에게 운동할 권리를 돌려주고 진정한 스포츠로서 골프 그 자체를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취지에서 올해 3월부터 워킹 골프를 도입했다는 게 파인비치 측의 설명이다. 캐디가 없어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스스로 거리를 측정하고 그린 브레이크를 파악하는 등 ‘진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워킹 골프의 매력이다.

파인비치에서 워킹 골프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밀고 다니는 푸시 카트를 사용하거나 추적 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능형 로봇 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모두 체험하면서 장단점을 알아봤다.

일반적인 푸시 카트부터 이용했다. 스타트 하우스에서 백을 카트에 싣고 간단한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특별한 건 없고 주차 브레이크 사용법만 알면 됐다. 지갑과 핸드폰 등 소지품을 어디에 둬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직관적으로 손잡이 쪽 수납함의 뚜껑을 열었다. 아이스커피도 컵 홀더에 끼웠다.

카트 밀고 페어웨이로, 오르막선 땀이 ‘송골송골’

스타트 하우스에서 코스로 이동하는 길에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맑은 가을하늘처럼 카트도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코스에 진입해서도 큰 불편함은 없었다. 1번 홀은 내리막 경사여서 사실상 힘을 쓸 일도 없었다. 이날 하루 라운드 파트너가 된 파인비치의 김명식 마케팅 팀장은 “저희 골프장은 바닷가 근처라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워킹 골프를 할 만하다”고 했다.

지능형 골프 카트는 골퍼 뒤를 알아서 따라 간다. 사진 제공=파인비치

워킹 골프의 장점 중 하나는 카트의 페어웨이 진입이다. 샷을 한 뒤 코스 안으로 걷기 때문에 코스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볼이 있는 지점에서 곧바로 클럽을 꺼내 샷을 하는 편리함도 있다. 이에 비해 티샷을 날린 뒤 승용 카트를 타고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건 코스의 일부만 느끼는 셈이다. 캐디 없는 셀프 라운드에서 승용 카트를 이용하면 볼이 있는 지점에서 핀까지의 거리를 파악한 뒤 카트에 가서 클럽을 챙기고, 샷을 한 후에는 또 다시 도로 쪽으로 이동해 카트를 타야 하는 등 번거롭기도 하다.

푸시 카트에도 단점은 있다. 최대 적은 오르막이다. 경사는 완만해도 올라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은 곳에서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기분 좋은 땀 흘림이었다. 하지만 날이 덥거나 경사가 심하면 카트 미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노약자나 여성 골퍼에게도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김 팀장은 “50대가 넘으면 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다. 저희도 주로 젊은 골퍼들에게 권한다”고 했다.

로봇카트로 단점 보완···강아지처럼 졸졸졸 ‘헬로캐디’

수동 카트의 단점을 보완한 게 로봇 골프 카트다. 이 분야에서는 국내 업체 티티엔지(TTNG)가 개발한 헬로캐디(Hello Caddy)라는 제품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헬로캐디의 디자인은 수동 카트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카트의 전원을 켠 뒤 컨트롤 패널의 ‘모드’ 버튼을 누르자 “트래킹 모드”라는 음성 안내가 나왔다. 이어 기자가 움직이자 헬로캐디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골퍼와는 1.5m 간격을 유지하도록 설정이 됐다고 했다. 걸음을 멈추자 헬로캐디도 곧바로 섰다.

골퍼가 뛰면 로봇 카트도 달린다.

다양한 성능이 궁금했다. 천천히 걸어가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도 놓치지 않았다. 내리막도 무리 없이 내려왔다. 카트도로를 따라 걷다가 페어웨이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카트도로 연석 부분을 잘 넘을지 궁금했다. 헬로캐디는 경계석에 앞바퀴가 걸리자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뒷바퀴를 힘차게 굴리면서 턱을 넘었다. 티티엔지에 따르면 헬로캐디의 종방향 등판 각도는 15도, 횡방향 등판각도는 20도다.

김 팀장은 갑자기 빨리 뛰면 헬로캐디가 사람을 추적하지 못해 멈추게 된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궁금해 이번에는 뛰어보기로 했다. 어라, 헬로캐디도 속도를 높이더니 잘만 쫓아오는 게 아닌가. ‘나의 달리기 실력이 이렇게 형편없게 됐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사랑하던 그 똥개도 나보다 훨씬 잘 달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헬로캐디의 추적 기술과 속도가 그만큼 뛰어나는 뜻이기도 하다. 헬로캐디의 최대 주행 속도는 시속 9km이고, 라이다 센서를 이용해 대상을 추적한다.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는 빛 탐지 및 범위 측정을 뜻하는데,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춰 사물과의 거리 등 다양한 물성을 감지한다. 자율 주행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이다.

라이다 방식으로 작동, 장해물 감지하면 자동 멈춤

헬로캐디의 모드 버튼을 누르면 자동인 ‘트래킹 모드’가 되는데, 이때 라이다 센서가 작동하면서 앞에 있는 사람을 ‘추적 대상자’로 인식하게 된다. 추적 대상자가 멈추면 트래킹 모드도 비활성화(수동 모드)가 되면서 정지한다. 장해물이 감지되면 긴급 멈춤 기능으로 안전을 확보한다. 헬로캐디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모드 버튼을 누르면 된다. 만약 모드 버튼을 누를 때 여러 명이 앞에 서 있으면 트래킹 모드는 작동하지 않으며 이와 관련한 안내 코멘트가 나온다. 딱 한 명의 주인만 충실히 모시는 셈이다.

헬로캐디가 정지하면 수동 모드가 되면서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려 움직이지 않게 된다. 헬로캐디를 수동으로 움직이고 싶다면 손잡이의 레버를 돌려 잡은 상태에서 밀거나 당기면 된다. 티잉 구역 등에서 카트를 옆으로 살짝 움직이고 싶을 때 수동모드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벙커와 그린에는 카트가 진입하면 안 된다.

헬로캐디를 사용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벙커에 들어가거나 그린에 올라갈 때다. 벙커나 그린 앞에서 일단 한 번 멈춰 헬로캐디를 정지시켜야 한다. 만약 사용자가 멈추지 않고 벙커에 곧장 들어가면 헬로캐디도 벙커 안까지 따라 들어가게 된다. 그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벙커나 그린에서 사용할 클럽을 미리 꺼내지 않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샷을 날렸는데 볼이 벙커에 빠졌다면 미리 웨지를 꺼내 손에 쥔 채 이동하지 말고 벙커 앞에 도착해서 멈춘 다음 클럽을 꺼내는 것이다. 웨지를 꺼낸 뒤 이동하면 벙커 앞에서 일단 한 번 서야 한다는 걸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지품을 둘 때도 조심해야한다. 카트 손잡이에 모자나 옷, 수건, 가방 등을 걸어두면 라이다 센서의 인식에 방해가 돼 트래킹 모드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양손의 자유···향후 대화형 로봇 카트도 기대

로봇 골프 카트의 가장 큰 이점은 뭘까. 우선 카트를 밀거나 끌지 않으니 힘이 전혀 들지 않는다. 김 팀장은 ‘양손의 자유’를 꼽았다. 실제로 카트 조작에서 해방되니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마음대로 보거나 다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등 여유가 생겼다.

본지 김세영 기자가 파인비치의 비치 코스 6번 홀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파인비치의 자랑으로, 바다를 넘겨 티샷을 하는 비치 코스 6번 홀(파3)의 감동을 실컷 느낀 뒤 7번 홀(파4)을 걸어가는데 우측으로 푸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광경이 장관이었다. 김 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가을이면 바다가 유독 더 파래요.” “왜죠?” “바다는 하늘을 그대로 담거든요. 먹구름이 끼면 검고,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맑아요.” 수동 카트를 밀고 언덕을 올라오며 숨을 헐떡였다면 나누지 못했을 수도 있는 대화였다.

로봇 카트 자체의 재미도 있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의인화해서 놀기도 한다. 나름의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도 재밌다. “박군아, 따라와” “김 부장, 너 빨리 안 와?” 이런 식으로 즐기는 것이다. 향후에는 스마트폰이나 스피커 등에 탑재된 쉬리, 알렉사처럼 대화형 AI가 탑재된 로봇 카트의 출현도 기대된다.

헬로캐디에 부착된 태블릿을 이용해서는 스코어 입력도 할 수 있다. 로봇 카트와 골프장이 사용하는 관제 시스템을 통합하면 홀까지의 거리, 홀 정보 등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벙커나 그린 등을 로봇 카트가 자동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굳이 멈출 필요도 없다.

건강과 스코어에 도움 되는 워킹 골프, 활성화될까

골프장들이 워킹 골프나 로봇 카트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뭘까. 과거에는 플레이 속도와 골프장 영업 이익의 극대화를 이유로 100% 승용 카트와 캐디 이용을 강요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지방을 중심으로 캐디 수급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캐디 인력들은 기왕이면 수도권 골프장에서 근무를 하려고 하지 시골의 산골짜기에서 생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셀프 라운드에 이어 워킹 골프를 권하는 골프장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헬로캐디를 생산하는 티티엔지의 지용주 상무는 “현재 전국 15개 골프장에 500여 대의 헬로캐디가 보급돼 있다. 또 다른 15개 골프장은 2~4대를 운영하면서 테스트 중”이라며 “걷는 골프가 외국에서는 자연스럽다. 국내에서도 워킹 골프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파인비치는 수동 카트와 로봇 카트(헬로캐디)를 12대씩, 총 24대를 운영 중이다. 수동 카트 대여료는 1만 원, 로봇 카트는 2만 원이다. 평균적인 승용 카트 대여료(1인당 3만 원)에 비해 저렴한 데다 캐디피 15만 원도 아낄 수 있다.

워킹 골프는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18홀 워킹 골프를 할 경우 6km 이상 걷게 되고 700칼로리 이상을 소모하게 된다. 적절한 체중 유지에 도움을 줘 각종 심장 질환이나 고혈압, 당뇨병 등에 대한 예방 효과가 있다. 승용 카트를 타면 샷을 할 때만 잠깐 내려 걷기 때문에 근육이 굳어 있을 수 있지만 워킹 골프는 근육을 미리 충분히 풀어줘 굿 샷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동반자와 보다 많이 걸으면서 친밀해질 기회도 많다.

김 팀장은 “봄이나 가을에는 꽃과 단풍 등 주변 경치를 여유롭게 즐기면서 걷기 좋다. 워킹 골프의 확산으로 접대 문화, 과시적 소비 등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도 없어졌으면 한다”며 “진짜 골퍼가 되고 스포츠로서 골프를 치고 싶다면 워킹 골프에 한 번쯤 도전해 보길 바란다. 골프의 참맛에 금방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고개를 돌리자 신안의 수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왔다.


워킹 골프의 5가지 장점

1. 육체적 건강= 18홀 기준 6km 이상 걸으면서 700칼로리 이상 소모. 적정 체중 유지에 도움.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병 등 예방.

2. 좋은 스코어= 카트에 타고 있다 내려서 샷을 하려면 근육이 굳어 있음. 이와 달리 워킹 골프는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샷을 할 때 도움이 됨. 따라서 스코어 향상에도 기여.

3. 동반자와 친밀한 관계= 라운드 파트너와 보다 많이 걸으면서 충분한 대화를 하는 덕에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이 커짐.

4. 더 나은 체험= 티잉 구역부터 그린에 이르기까지 코스 전체를 온전히 즐기고 느낄 수 있음. 승용 카트까지 급하게 오가지 않아도 되므로 보다 느긋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음.

5. 비용 절감= 승용 카트(9만~10만 원)보다 싸고 캐디피(15만 원 안팎)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음.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해남=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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