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봉주의 딥쓰리] 김종규의 작심발언, 대한농구협회는 바뀔까?

맹봉주 기자 2023. 10. 1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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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년 동안 김종규는 누구보다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됐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지원이요? 말씀드리기 민망할 정도예요.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

지난 7월 17일. 남자농구 대표팀 훈련이 한창이던 진천선수촌을 방문했다.

당시 추일승 감독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목표를 묻는 질문에 "금메달"이라고 외쳤다. 중국, 일본, 이란, 레바논, 필리핀 등 대부분의 아시아 강국들이 월드컵에 초점을 맞추느라 아시안게임은 뒷전이였다. 반대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한국에겐 아시안게임이 전부였다.

이날 대표팀은 한국 유니버시아드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펼쳤다. 대학선수들이 주축인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게 성인 대표팀은 66-72로 졌다.

대표팀 선수들 5~6명과 얘기를 나눴다. 다들 불만이 많았다. 이미 이때부터 아시안게임 최악의 성적표는 예상이 됐다.

특히 최고참(김선형, 라건아는 부상으로 이때 경기에 뛰지 못했다)이었던 김종규가 뼈있는 말을 건넸다. 바로 대한농구협회다.

"개인적으로 지난 대표팀들과 비교해 아쉬운 게 있어요. 과정이나 지원, 전지훈련에서 말이죠.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미국을 두 번이나 갔어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땐 뉴질랜드를 다녀왔죠. 이번 대표팀은 합을 맞춘지 한 달이 됐는데 일본과 평가전이 다예요. 이러고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오라고 하는 건데..."

▲ 한국 제외 우승후보라 불리는 팀들은 거의 다 2군들이 참가했다. 그럼에도 힘을 쓰지 못했다 ⓒ 연합뉴스

이후에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오긴 했다. 하지만 대표팀에게 충분한 스파링 파트너는 준비되지 않았다. 김종규 말대로 이전 대표팀들과 비교하면 지원이 크게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지원이요? 말씀드리기 민망해요. 우리는 금전적인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좋은 성적을 내려면 다른 나라들과 많이 경기를 뛰어봐야 하잖아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직전에 월드컵에 나가 5전 전패로 깨졌어요. 그게 오히려 약이 됐죠.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강팀들과 붙으면서 전술적으로 '우리가 이게 안 되는구나, 이런 건 장점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아쉽죠. 대표팀 선수로서 권리는 주장할 수 있잖아요. 강팀들과 상대할 건데 대비는 좀 해달라고요. 말할 수 있잖아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닌데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이전에도 국내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이랑 연습경기는 했었죠. 서로 시너지가 나니까요. 그런데 다른 나라 대학 대표팀이랑 경기는 처음이에요. 대만 대학 대표팀이랑 연습경기를 한다길래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연습이 안 되는 건 둘째치고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얼마나 연습할 상대가 없으면 우리가 거기랑 붙겠어요."

▲ 몇몇 선수들은 대회 중에도 불만을 쏟아냈다. 그만큼 대표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 연합뉴스

10년 가까이 농구현장을 취재했다. 특히 대표팀을 취재할 때마다 선수들은 대한농구협회의 너무나도 미비한 지원을 꼬집었다. 유니폼부터 비행기 좌석, 대표팀 수당, 식사, 훈련 등 다양했다. 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표팀 환경은 열악하다.

내부고발을 하는 선수들마다 기사로 내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 일명 '오프 더 레코드'.

김종규는 달랐다. 자극적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기사로 내달라고 말했다.

"정말 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이죠. 대한농구협회를 공격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이런 얘길 해서 바뀌는 건 없고요. 단지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예요. 너무 잘하고 싶어요. 메달 따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김종규는 대표팀에서만 13년을 보냈다. 대학시절부터 30살을 넘은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은 물론이고 월드컵, 아시안컵과 같은 숱한 국제대회에 모두 나섰다. 현재 대표팀에서 김종규만큼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선수는 없다.

그런 김종규는 알고 있었다.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가 얼마만큼 좁아졌는지.

"옛날에는 중국, 이란, 필리핀 정도만 조심하면 됐어요. 이제는 어느 국가든 방심할 수 없죠. 특히 일본이 많이 올라왔잖아요. 2017년만 해도 일본과 붙으면 우리가 항상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지금은 모든 선수들에게 물어봐도 일본은 부담스러운 상대일 거예요. 아시아 국가들이 진짜 많이 올라왔어요.“

그리고 이 말은 약 3개월 후 현실이 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일본 2군한테 77-83으로 졌다.

8강전에선 중국에게 70-84로 대패했다. 순위결정전에서는 이란에게 졌다. 중국과 이란 모두 정예멤버가 아니었다.

결국 최종 성적은 7위. 처음 목표로 삼았던 금메달은 고사하고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아시안게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번 대표팀은 준비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다. 아시안게임 도중 허훈이 "대표팀에 꾸준히 뽑히고 있는데 이번이 특히 심했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시안게임은 끝났고 이제 결과에 따른 책임과 미래 청사진을 그릴 때다. 그동안 늘 책임은 감독, 선수들의 몫이었다. 대한농구협회는 비판을 받고도 항상 그대로였다.

대표팀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과 현장, 언론과의 소통 부족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이젠 선수, 팬, 기자들이 지칠 정도다. 이미 선수들 사이에선 "협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한국보다 개인기량과 신체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일본은 이제 남녀농구 모두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갔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일본농구협회 덕분이다.

수년째 대한농구협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러 방면에서 나오지만 정작 바뀌는 건 없다. 몇몇 선수들, 한 감독의 개인 역량으로 빛을 발하는 건 잠시뿐이다. 이대로라면 '항저우 참사'를 덮는 더 큰 참사가 한국농구를 기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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