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베트남 사업에서 돋보인 ‘대우의 유산’

2023. 10. 11. 0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사진=롯데쇼핑 제공



중국에서 쓴맛을 본 롯데그룹이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롯데는 베트남에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통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베트남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지부진’ 베트남 사업 27년 만에 본궤도

롯데쇼핑이 9월 22일(현지 시간)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백화점과 마트 등 롯데 유통 계열사뿐만 아니라 호텔·월드·건설·물산 등 롯데그룹 전 계열사의 역량이 결집된 프로젝트다.

총면적 약 35만4000㎡(약 10만7000평) 규모로 쇼핑몰부터 마트·호텔·아쿠아리움·영화관 등이 입점한 ‘베트남판 롯데타운’이다. 이곳에만 6억4300만 달러(약 8600억원)이 투입됐다. 롯데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를 통해 연말까지 800억원, 2024년 22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롯데그룹은 1996년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이후 백화점·마트뿐만 아니라 호텔·시네마 등 총 19개 계열사가 호찌민·하노이·다낭 등 베트남 전국 각지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가 하노이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 지역 경제와 베트남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개장식엔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도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신 상무는 일본 롯데케미칼 임원에 이어 최근 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에 취임하며 한·일 양국 롯데사업에 두루 관여하며 경영 수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유통 사업에서는 어떤 보직도 맡고 있지 않다.

신 회장은 개장식 후 취재진과 만나 “우리 아들(신유열 상무)이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유통 분야 등에서의) 활동 계획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개장식 자리에서 대내외 관계자들에서 신 상무를 공식적으로 소개한 만큼 올해 연말 인사에서 신 상무의 역할이 유통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20년 전부터 주목…‘VRICs’로 불러

신 회장의 베트남 사랑은 그룹 부회장 시절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회장은 당시 베트남·러시아·인도네시아·중국 등 4개국을 향후 주력할 해외 시장으로 낙점하고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용어에서 브라질을 빼고 베트남을 넣어 ‘VRICs’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내수 기업의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롯데로 도약하기 위해 20년 넘게 틈날 때마다 베트남을 찾아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다져 왔다.

문제는 베트남 시장이 중국만큼이나 쉽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이다. 빠른 경제성장률과 높은 생산 가능 인구 비율에 힘입어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 중 하나로 꼽히지만 여전히 공산당 1당 지배와 사회주의 체제로 인한 사업 불확실성이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베트남은 1986년부터 ‘도이머이(새롭게 바꾼다)’라고 불리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던 미국과의 국교를 1995년 정상화했고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기점으로 수출과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늘면서 고도 성장을 누려 왔다.

베트남은 법인세 인하, 정책 간소화 등 다양한 외국인 투자 우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토지 국유제를 채택하고 있고 현지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선 토지 사용권 취득과 현지 인허가 문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관계를 중시하는 특유의 문화도 외국 기업엔 커다란 걸림돌이다. 중국의 ‘관시’와 비슷한 ‘띵깜’ 문화가 대표적이다. 띵깜은 한국어로 ‘정감’을 의미하는데 관계·인맥을 중시하는 베트남 문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베트남은 관료 사회의 폐쇄성과 시장 정보 공개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인해 외국 기업이 현지 업계와 처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믿을 만한 파트너를 통해 띵깜을 형성해야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롯데의 베트남 진출이 다른 유통 기업들보다 일렀지만 막상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기까지 27년이나 걸린 이유는 까다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꼽힌다. 롯데는 1996년 롯데베트남법인을 설립하고 베트남 시장에 진출해 현재 19개 계열사가 호찌민·하노이·다낭 등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리아는 1998년 베트남 진출 후 27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고 롯데마트 16개, 롯데백화점 3개점, 롯데호텔 2개를 운영 중이다. 최근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개장했고 총사업비 9억 달러(약 1조 2267억원)를 투자해 호찌민 투티엠신도시에 에코스마트시티를 건설하는 등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온 사업들에 속도가 붙고 있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김우중 영향력 힘입어 사업 본격화

롯데의 베트남 시장 진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대우그룹이다. 롯데는 2014년 하노이에 있는 지상 65층 초고층 빌딩인 롯데센터 하노이에 베트남 내 첫 백화점인 롯데백화점 하노이점을 오픈했다. 롯데센터 하노이에는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롯데호텔 등이 있고 바로 옆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 경영’을 상징하는 하노이 대우호텔이 있다.

롯데가 롯데센터 하노이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김 전 회장 일가로부터 코랄리스법인을 인수하면서부터다. 롯데는 롯데자산개발을 앞세워 롯데센터하노이의 토지 사용권과 사업권 등을 보유하고 있던 룩셈부르크의 부동산 투자사 코랄리스를 697억원에 인수했다. 코랄리스가 당시 베트남 정부에서 획득했던 50년 토지 사용권도 롯데로 이전됐다.

롯데는 이때 하노이 대우호텔 인수도 추진해 맞은편에 건설 중인 롯데센터 하노이와 묶어 롯데타운을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이 호텔이 우여곡절 끝에 현지 기업에 매각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롯데가 2009년 롯데백화점 하노이점 부지를 매입할 때도 김 전 회장의 도움이 주효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자신이 개척한 베트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머물렀다. 김 전 회장은 당시 롯데의 현지 사업부지 확보와 건축 인허가 등 사업 진행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지도부가 김 전 회장에게 자문했을 때 외자 유치를 통한 수출 주도형 산업 기반 구축 등 경제 개발을 조언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조언이 결과적으로 베트남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발판이 됐다. 그 결과 베트남에선 여전히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시절 구축해 놓은 정·관계 친분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22년 12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도 반 스 베트남 외국인투자청 부청장은 김 전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하며 “베트남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때 김우중 회장이 큰 힘이 됐던 좋은 친구로 기억한다”며 “적극적이고 원활한 투자를 통해 베트남에 많은 일자리가 생겼고 노동 환경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1999년 대우그룹의 부도와 분식 회계 혐의로 해외 도피 중 상당 기간을 베트남에서 체류한 것도 정·관계 인사들과의 인연이 작용했다. 당시 프랑스 철도 차량 전문 업체 로르사는 베트남 사업을 추진하며 김 전 회장의 정·관계 친분을 활용하기 위해 그를 고문으로 위촉하며 현지 체류비 등을 지원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발빠르게 베트남에 진출해 쌓은 현지화 역량을 바탕으로 최근 베트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외국 기업으로 베트남에서 초대형 상업 복합 단지를 조성하고 까다로운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데는 진출 초기 대우그룹의 유산을 활용한 것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