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민의 코트인] 상무의 한승희, 군인 앤써니 데이비스?
8전 0승 8패. 2020년 KBL이 첫 컵대회를 개최한 이후로 현재 2023년까지의 상무 컵대회 전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상무는 총 4번의 컵대회에 참가해 단 한차례도 승전보를 울리지 못했다.
상무는 각 팀마다 내로라하는 주축 선수들과 벤치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10개 프로 구단들과 국내 선수들끼리로만 맞대결을 펼쳤다면 어쩌면 패보다 승리가 많았을 수도 있는 그런 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0개의 프로 팀엔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심사숙고한 끝에 선발한 2명의 외국 선수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온전히 국내 선수로만 이루어진 상무는 이를 육탄전으로 막아내야 한다.
“외국 선수 때문에 높이에서 밀린 것 빼고는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해줬다”
원주 DB에 패한 뒤, 인터뷰실에 들어온 상무 장창곤 감독이 말했다. 이처럼 상무 선수들은 외국 선수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하며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대회에선 허훈, 김낙현, 변준형, 송교창 등 상무가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이 전부 고장 나버렸다. 차, 포도 모자라 마, 상까지 전부 떼고 싸운 격이다.
부상 병동이라는 단어, 현재 상무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군인정신을 무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군 전역자들이 예비군 훈련을 가서, 조기퇴소라는 말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듯, 상무 선수들도 ‘휴가’라는 가장 달콤한 포상이 주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선 2경기를 모두 마친 뒤 만난 한승희는 “최선의 전력으로 나왔다면 해볼 만했을텐데... 다들 컨디션이 아시안 게임 차출로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외국 선수 없는 마당에 잃을 게 없었다. 군인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박정현과 함께 트윈타워를 구축하며 프로 팀들의 페인트 존을 공략,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한 한승희는 예선 2경기 평균 18.5점 9.5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러한 한승희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한 선수다.
안양 정관장 입단 이후로 3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을 꾸준히 밟아온 그런 남자. 누군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번 밟을까 말까 한 그런 무대를 말이다.
비록 오세근, 문성곤, 양희종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건재했기에 출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벤치에서 어깨너머로 쭉 지켜봐 온 그 장면들이 현재 상무 한승희에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 신기하게도 상무는 신비의 땅인지, 유독 소속팀에서 2%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도 대개 상무를 다녀오면 피지컬과 약점을 일정 부분 보완해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한승희는 이전부터 외곽슛이 비교적 정확한 스트레치형 빅맨인데, 이번 대회에선 더욱 정교해진 야투와 페이스업을 기반으로 한 공격 옵션으로 팀에 힘을 보탰다. 확실히 소속팀에 있을 당시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모습이었다.
이제 입대한지 5개월 차, 확실하게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일병이어서? 아니면 선임들의 눈칫밥 때문에? 정답은 다 아니었다.
“처음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스스로 본 운동을 맡겼다. 근데 프로 선수들은 가만히 쉬지 않고 기량 발전을 위해 꾸준히 운동한다. 그러면서 기량이 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큰 도움을 주셔서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
계속해 “농구 선수 중 1대1을 못하는 선수는 없다. 각 팀마다 외국 선수와 에이스가 존재해서 기량을 펼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상무에 오니 선임들과 감독님 모두 자신감을 강조하신다. 또 눈치를 안 보니 내가 보유한 기량을 맘껏 펼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열심히 했다(웃음)”고 말했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상무는 아쉽게 1승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때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때가 있다. 군산에서 상무가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력과 집념, 투지는 상무 팬들과 소속 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심어다 주기 충분했다.
현재 KBL 컵대회는 SPOTV와 아프리카TV 플랫폼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1차전에서 한승희의 페인트존 득점은 무려 16점. 반대로 2차전에서는 페인트 존 득점이 2점에 그친 대신 미드 레인지 점퍼로 재미를 봤다.
이를 두고 팬들은 현 LA 레이커스의 쌍두마차, 앤써니 데이비스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한승희에게 막간을 이용해 데이비스라는 별명 어떻냐고 생각을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겸손’ 한승희였다.
“정말 과분한 소리다. 나는 상무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에 잘 받아먹기만 했을 뿐이다. 앤써니 데이비스라는 말, 너무 그렇다. 한 소리 들을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아직 예선 일정이 끝나지 않았지만 2패를 기록한 상무는 예선 탈락으로 군산을 떠나야 한다. 다음 그들의 목적지는 제104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는 전남 목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학리그 챔피언 고려대와 상무의 결승전을 예상하고 있다.
여전히 주축 선수들의 출전은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한승희는 반드시 전국 체전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전투심은 이미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진_점프볼 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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