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스파이와 첩보전 펼친 북유럽 4국 공영방송 승리 비결은?

박준용 2023. 10.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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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 연구·상업 목적으로 파견된 러시아 선박 50척이 실제로는 해저 정보 등을 수집하는 첩보선으로 추정된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의 러시아 대사관 직원 약 3분의 1은 정보 장교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직 정보 장교의 도움을 받아 무선 통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블라디미르스키 제독'이라 불리는 러시아 연구 선박이 영국·네덜란드 해안가 발전소를 돌며 첩보 활동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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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탐사보도로 러 스파이 추적
네 나라 동시 방영에 높은 시청률
스웨덴, 러 외교관 다섯 추방 파장
취재 후기 ‘탐사보도 총회’서 공개
스웨덴 공영방송 SVT 저널리스트 알리 페건(왼쪽)과 마리아 게오르기에바.

‘북유럽에 연구·상업 목적으로 파견된 러시아 선박 50척이 실제로는 해저 정보 등을 수집하는 첩보선으로 추정된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의 러시아 대사관 직원 약 3분의 1은 정보 장교일 가능성이 크다.’

스웨덴(SVT)·노르웨이(NRK)·덴마크(DR)·핀란드(YLe) 등 북유럽 4개국 공영방송이 합작한 ‘푸틴의 그림자 전쟁’ 탐사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지난 4월 도출한 결론이다. 4개국에서 동시에 방영된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비비시(BBC), 시엔엔(CNN) 등 국외 주요 언론에서 인용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웨덴 외무부는 정보원으로 활동한 러시아 외교관 5명을 추방하기도 했다.

전세계를 뒤흔든 이 보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스웨덴 공영방송 에스베테(SVT) 소속 저널리스트 알리 페건과 마리아 게오르기에바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글로벌 탐사보도 총회 2023’(GIJC 2023)에서 ‘푸틴의 그림자 전쟁’이라는 세션을 통해 취재 후기를 공개했다.

취재팀이 러시아 스파이에 주목한 건 2021년 노르웨이 북부 해안 4.3km 지점에 있는 해저 케이블이 사라진 사건 때문이었다. 지난해에는 스웨덴과 덴마크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인 ‘노드 스트림’ 일부가 폭발로 폐쇄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러시아가 이 사건들을 벌인 거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건 발생 뒤 러시아가 북유럽에서 전방위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제보가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오르기에바는 “러시아에서 특파원으로 8년 동안 일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우리는 이 사안이 모든 유럽과 관련된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먼저 최근 10년 동안 4개 나라 해양 당국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수백만건의 선박 이동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 가운데 특수 프로그래밍으로 목적이 불분명한 운항 데이터를 선별했다. 또한 전직 정보 장교의 도움을 받아 무선 통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블라디미르스키 제독’이라 불리는 러시아 연구 선박이 영국·네덜란드 해안가 발전소를 돌며 첩보 활동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선박은 송신기를 끈 채로 운항하는 등 ‘유령선’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취재팀이 이 선박에 접근하자 복면 차림의 소총수가 갑판에 나타나기도 했다. 취재팀은 이 같은 방법으로 러시아 국적의 첩보선 50척을 발견했다.

취재팀은 정보당국으로부터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스파이 명단이 담긴 일명 ‘매직 리스트’도 받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스웨덴 러시아 대사관을 드나드는 인물들을 촬영해 리스트와 비교했다.

보도 과정도 지난했다. 4개국 공영 방송의 편집 시스템을 각각 통과해야 했고, 모두가 동의하는 완성본을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도 준비에 참여한 인물이 수십명에 달해 보안 문제도 꼼꼼하게 따져야 했다. 페건은 “상대가 스파이들이기에 해킹과 추적법을 알고 있어서 힘들었다”며 “취재팀 사이에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없었고, 인터넷이 없는 방에서 오프라인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 간 협업 과정에서 많은 걸 남길 수 있었다고 했다. “가장 큰 깨달음은 도시와 국가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협업하면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테보리/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 탐사보도’ 교육과정에 참여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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