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조 기술·풍부한 풍력자원…‘그린수소의 꿈’ 준비하는 英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10.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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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수소 허브’ 영국 셰필드 가보니◆
세계 최대규모 전해조 설비 기가팩토리
전통 공업도시 셰필드에 새로운 활력
하루 수소차 200대 사용분 생산 가능
전류밀도 높이고 금속 사용 줄여 단가 낮춰
영국 정부, 국가전략으로 등재
기금 조성해 산업계 전폭 지원
에너지 자립·넷제로 일거양득 노려
2030년까지 런던 1년치 발전 목표
ITM 파워 기가팩토리 직원이 자사 전해조 스택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ITM 파워에 따르면 이 장비에 전류를 흘려 하루 종일 가동할 시 약 1톤(t)의 수소가 나온다. 이는 무려 200대의 수소차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사진출처=ITM 파워]
지난 달 영국 북부 도시 셰필드를 찾았다. 20세기 유럽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 이제는 ITM 파워사의 전해조 기가팩토리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ITM 기가팩토리는 ‘그린수소 시대’를 향한 열쇠로도 불리는 PEM(고분자전해질막) 전해조를 생산하는 업체로, 그 규모로는 세계 최대(연간 1GW) 규모다.

이날 방문한 ITM 기가팩토리에선 수십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진화를 신고 공장 깊숙이 들어가자 기가팩토리 내에 전시된 전해조 ‘트라이던트(Trident·삼지창)’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 안의 산소분자와 수소분자가 전기에 의해 분해되는 수전해 ‘단일 셀(cell)’들이 샌드위치처럼 직렬로 연결돼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이 장비는 ITM 파워가 20년간 이뤄낸 수전해 기술 연구 집합체다. ITM 파워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장비에 전류를 흘려 온종일 가동할 시 약 1톤(t)의 수소가 나온다. 무려 200대의 수소차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ITM 파워 기가팩토리 내에 전시된 전해조 ‘트라이던트(Trident). 물 안의 산소 분자와 수소분자가 전기에 의해 분해되는 부품인 수전해 ‘단일 셀(cell)’들이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쌓여 직렬로 연결된 이 장비는 ITM 파워 20년간 수전해 기술 연구의 집합체다. [사진츨처=ITM 파워]
넷제로 시대, 그린수소의 꿈…생산단가 낮추는 게 관건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전기 분해해 생산하는 수소를 말한다. 넷제로 시대를 위한 필수 전력원으로 각광받지만 높은 생산단가가 최대 장애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그린수소의 발전 단가는 수소 1kg 당 3~7.2달러로, 그레이수소(탄소배출을 동반해 생산되는 수소)의 약 3배 수준이다. 그린수소 생산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곧 미래의 수소생산 패권국이 될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ITM 파워 기가팩토리의 최대 화두 역시 그린수소의 최대 난제인 ‘경제성’이다. 20여년간의 연구를 통해 ITM 파워는 세계 최고 수준인 3.3A/cm2(제곱)의 전류밀도(currency density)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2030년 유럽연합(EU)의 목표치인 2.5를 상회하는 수치다.

전류밀도란 수전해 설비 단위 면적당 흐르는 전류를 뜻한다. 전류밀도가 높아지면 단위 면적당 생산되는 수소생산 속도도 함께 높아지는 원리다. 생산단가는 그만큼 떨어진다.

셀에 코팅되는 백금 등 귀금속 코팅 물질의 사용을 줄이는 것도 핵심이다. ITM 파워는 귀금속 수치를 0.4mg/W로 줄였는데, 이는 2030년 EU 목표치를 선제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수전해 작업의 전자 전도성을 높이는 다공성 확산체(PTL)의 기술 수준을 높이는 연구도 지속 중이다. 그린 수소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ITM 파워의 시행착오와 고민들은 유럽 각지로부터의 대규모 수주라는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ITM 파워 관계자는 “‘생산하라, 운반하라, 사용하라(make it, move it, use it)는 수소경제의 핵심”이라며 “그 중 그린수소의 ‘경제적 생산’은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수전해 생산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그린수소 생산이란 목표를 향해 한발 빠르게 나아가는 모양새다.

스코틀랜드가 목표로 하는 ‘엔드투엔드(end to end)’ 난방 시스템. 영국 내 탄소배출의 24%를 차지하는 가구 난방을 오로지 수소로 운영하겠다는 프로젝트로, 2025년까지 수소 난방가구를 2만개 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에 착수한 상태다. [자료출처=영국 에너지안보·넷제로부]
값싼 북해 풍력자원 기초전력 삼아…5년 내 2만가구 화석연료 대체
북해의 풍부한 풍력 에너지 자원 역시 영국의 값싼 그린수소 생산을 추진하는 요인 중 하나다. IEA에 따르면 그린수소 생산 비용 중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전해 장치에 공급되는 친환경 기초전력(feedstock)의 단가다. 해상풍력에서 발생하는 전력 가격이 4년 전 ㎿당 140파운드에서 현재 37파운드까지 떨어졌다. 영국의 값싼 풍력 에너지는 그린수소 시대를 위한 든든한 뒷배인 셈이다.

스코틀랜드는 이같이 풍부한 풍력자원을 수전해를 위한 값싼 기초 전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첫 목표는 5년 내 천연가스를 이용한 도시 난방을 수소로 대체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가구난방 프로젝트다. 영국 내 탄소배출의 24%를 차지하는 가구 난방을 오로지 수소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25년까지 수소 난방가구를 2만 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에 착수한 상태다.

에든버러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정부 관계자는 “지난 몇년간 풍력에너지 인프라 투자와 인허가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왔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수소의 최대강점은 잉여전력의 저장 기능에 있다. 풍력, 태양광 발전 등 신재쟁에너지는 전력발생의 기복이 크다. 전력 수요를 초과하는 잉여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같은 잉여전력을 폐기하지 않고 다른 에너지원으로 저장하기 위한 수단은 사실상 수소가 유일무이하다. 이같은 저장 기능은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유휴전력을 비축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저장할 수 있다면 러·우 전쟁 이후 유럽 국가가 잇달아 겪었던 에너지 위기 같은 사태의 충격도 최소화될 수 있다.

2021년 영국정부가 수소를 민간 단위의 사업이 아닌 국가전략으로 설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국가펀드를 통한 민간 기업 지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정부는 민간 수소생산 프로젝트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4월 2억4000만 파운드(약 4000억원) 규모의 넷제로 수소펀드(NZHF)를 출범시켰으며, 지난 3월 지원 대상 기업을 최종 확정했다. 영국 정부는 2030년까지 그린수소 발전용량을 10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런던 내 모든 전기시설을 1년 내내 돌리고도 충분한 양이다.

셰필드·에든버러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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