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벌금 '무제한'…초강력 처벌로 '주가조작' 사전 차단

이용성 2023. 10.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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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A에 관리·감독에 책임 물어
조사 강제출석권·기소권 등 권한도
'무제한' 벌금 제재로 재범 의지 꺾어
"韓 제재·처벌 수준 끌어올려야"

[영국(런던)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글로벌 금융·자본시장 1번지인 영국에서는 주가조작 사태가 ‘제로’다. 정확히 말하면 불공정거래가 불거지기 전 영국 금융행위감독청 FCA(Financail conduct authority)이 불공정 거래 세력에 대해 경고·결정·중단·감독·최종 통지 등의 조치를 내린다. 불공정 거래 세력이 세상 밖으로 나와 시장을 혼탁하게 하기 전에 이미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모습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FCA에 막강한 권한과 책임…주자조작 없는 이유는

이데일리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찾은 영국 Endeavour 스퀘어의 영국 금융행위감독청 FCA(Financial conduct authority)는 고요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여타 건물에서는 각 직원이 우르르 빠져나왔지만, FCA 건물만큼은 예외였다. 삼엄한 경비 속 오전 일을 마친 일부 FCA 직원들만 각자 요깃거리를 하고 금세 건물로 돌아갈 뿐이다.

FCA는 점심시간도 잊은 채 바쁘게 돌아간다. 영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FCA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배경은 감시·감독 ‘구멍’의 책임이 오롯이 FCA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불공정 거래로 인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FCA가 관리·감독이 소홀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제기된 소송 대부분은 원고의 승리로 끝난다. 관리·감독의 ‘구멍’의 책임이 FCA에 있으니 눈에 불을 켜고 불공정 거래를 감시할 수밖에 없다고 업계에서는 인식하고 있다.

또한, FCA의 관리·감독 실책으로 인한 소송은 영국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도 한다. 영국 왕실은 각 분야의 지휘권·권한(Authority)을 위임하는데 금융분야의 지휘권·권한은 FCA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투자자들은 FCA의 실책은 곧 영국 왕실의 실책으로 인식한다. FCA가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금융·자본 시장의 공정을 회복하기 위해 점심도 잊은 채 힘쓰는 이유다.

다만, 책임과 함께 막강한 권한도 주어진다. FCA는 불공정 거래에 관련해 △정보수집 및 조사권 △비금전적 제재 권한 △형사기소 권한 등 강력한 제재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필요한 정보를 인가업자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시장 질서교란 등의 중대한 사안은 조사 대상뿐만 아니라 관계자, 관계자가 아닌 이들까지도 조사 대상을 확대해 강제 출석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FCA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하면 금전적 제재 혹은 최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성문법이 아닌 영국의 법률 구조도 FCA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영국은 불문법으로 규정돼 있다. 즉, 성문화되지 않기에 법령상 명확한 근거가 없더라도 감독 당국의 처벌이나 제재가 국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영국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워낙 금전적·비금전적 제재가 강하기 때문에 FCA의 공식 문건이 나오면 지목당한 금융사나 기업들은 벌벌 떨면서 매우 이를 따르려고 노력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영국 런던 Endeavour 스퀘어에 위치한 영국 금융행위감독청 FCA.(사진=이용성 기자)
韓, 불공정거래와 전쟁 선포했지만…“제재·처벌 아직 미흡”

국내 증시에서 지난 4월과 6월 연이어 주가 조작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내에서도 불공정 거래 세력들을 뿌리 뽑기 위한 당국의 노력이 하나둘 이뤄지고 있다. 삼천리 선광 등 종목이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가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는 동안 당국이 지켜만 봤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거래소와 검찰은 지난 5월 23일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를 열고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 근절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제도가 다듬어지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복잡·다변화하는 금융 위법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최근 금융투자검사 체제에도 조사국과 마찬가지로 1·2·3국 체제를 도입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검사 전담 인력도 증원하면서 ‘수동적 감시’에서 ‘능동적 감시’로 전환해 제보, 신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직접 불공정 거래를 찾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도 지난 9월 25일 이상 거래를 잡기 위해 중장기 기준을 신설하고, 불공정 거래를 조기에 포착하기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 방안에는 현재 이상 거래 적출 기준은 최대 100일간이지만 앞으로 6개월·연간 이상 거래 적출 기준을 추가하고, 혐의 계좌 간 연계성을 확인하는 기법을 다양화하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이는 지난 4월과 6월 발생한 주가조작 사태가 이상거래 감지 시스템을 피해 수년간 주가를 조금씩 올려 시세조종을 한 것이 드러나자 이를 막기 위한 후속 조치다.

다만, 적발 시스템만으로는 불공정거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적발 시스템의 강화와 더불어 제재와 처벌을 강화해야 궁극적으로 불공정 거래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주가조작 패가망신법’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11월 6일까지 하위법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실시했다. 개정안은 이후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 절차를 거쳐 내년 1월1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법제화하고,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정보이용·부정거래·시세교란) 사범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해당 법률이 여전히 여타 금융 선진국에 비해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FCA의 금전제재금 결정 체계에서는 국내와 비슷한 성격의 부당이익의 환수, 추가적인 징계 외에도 부과된 금전 제재금이 또 다른 회사나 다른 개인들이 비슷한 위반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억지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무제한’인 벌금 제재와 함께 ‘공개 문책’을 통해 범죄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유사 범죄 행위를 막고, 재범률을 줄이겠다는 의지다.

이에 반면, 국내 처벌 시스템은 미진해 재범률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증권시장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중요정보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로 처벌받은 이들의 23%가 재범 이상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SG발 주가조작 사태의 주범인 라덕연도 동종 전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 세력들은 영국의 금융당국의 강력한 금전적 제재로 파산에 이르러 재기가 불가해진다”며 “겨우 파산은 면한다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한번 금융 범죄를 저지르면 다시는 시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당국이 거래를 막는다”고 전했다. 이어 “영국에서는 금융 범죄에 대한 중대성이 이미 문화로 자리 잡았고, FCA의 공적 기능에 대한 존중이 금융시장에 오래 축적되어 있다”며 “비교적 제재와 처벌이 약한 한국의 처벌 수준을 끌어올려 금융범죄가 중대한 사안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이용성 (utilit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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