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에이드 고갈 위기’... 이스라엘 전쟁 불똥 맞은 음료기업 “난감하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벌이는 전쟁 불똥이 우리나라 식음료 업계에 ‘자몽 대란(大亂)’을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농업 선진국이다. 국토는 작지만 네덜란드처럼 농업 기술이 고도화돼 있다. 척박한 사막 기후라 짐짓 농사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일찍부터 이 점을 역이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과실을 키웠다.
대표 작물은 자몽이다. 국내 식음료 기업 가운데 롯데칠성음료가 델몬트 팜앤홈 자몽에 이스라엘 레드자몽 농축액을 사용한다. 농축액 성분 40%를 차지하는 자몽과즙이 이스라엘산(産)이다.
하이트진로 역시 과일소주 자몽에이슬에 이스라엘 자몽을 쓴다. 자몽에이슬은 2015년 출시 이후 다른 과일소주들이 시장에 잠시 나타났다 지는 가운데 8년 넘게 자리를 지킨 스테디셀러다.
일선 카페에서 파는 자몽 에이드를 포함해 자몽이라 적힌 음료 상품 열에 일곱은 이스라엘산 자몽 원물, 혹은 이스라엘산 자몽 농축액을 사용한다. 스타벅스 차(茶) 부문 최고 인기 음료 자리를 지키는 자몽허니블랙티에도 이스라엘산 자몽이 들어간다. 이 음료는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 7000만잔을 넘어섰다.
11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몽 시장은 미국 플로리다산과 이스라엘산이 양분하고 있다. 열에 일곱이 이스라엘산인 가운데, 나머지를 미국산이 차지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가 들여온 자몽 가운데 중량 기준 70.5%, 금액 기준 65%가 이스라엘산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산 자몽은 2022년 12월 한-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전까지 미국 혹은 남아공산 자몽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FTA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홀로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 3개월 동안 수입한 이스라엘산 자몽 중량과 수입 금액이 2022년 1년 내내 수입 기록에 맞먹는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 연말 기준 연간 수입량은 연간 신기록을 넘어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5년치를 전부 합친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였다.
식품업계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산 자몽이 FTA 체결 이전에도 미국산에 비해 저렴했는데, FTA 발효 이후 그 격차가 훨씬 벌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산 자몽 원물은 대형마트에서 1개당 1800~2000원선에 팔린다. 개당 2600~2800원 수준인 미국산 자몽보다 40% 정도 저렴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이스라엘산 자몽은 과육이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산 자몽보다 더 붉어 눈으로 볼 때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며 “훨씬 기온이 높고 수분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도가 농축된 편”이라고 말했다. 값이 쌀 뿐 아니라, 품질에도 강점이 뚜렷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별안간 이·팔 전쟁이 장애물로 등장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이스라엘 현지인은 농업을 기피한다. 보통 다른 중동 국가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자몽을 포함한 과실 농사에 종사한다.
이들은 이·팔 전쟁 발발 이후 정세가 불안해지자 상당수가 이스라엘을 떠났다. 이스라엘 청장년층 관리자들 역시 예비군으로 징병돼 농업 현장을 떠났다. 이스라엘 자몽은 우리나라 겨울에 해당하는 1월부터 제철을 맞는다. 한창 손이 필요한 10월부터 정상적인 경작이 어려워졌다.
이스라엘 내 주된 자몽 생산지는 가자지구에서 차로 1시간 30분~2시간 정도 떨어진 고란고원과 갈릴리 호수, 베트쉬안 밸리 일대다. 이 지역은 이번 전쟁으로 물리적인 피해를 직접 입진 않았다. 다만 항구와 공항 같은 주요 물류 시설이 마비돼 수확을 하더라도 다른 국가로 보낼 방법이 없다.
자몽이 절실히 필요한 국내 식음료 업계는 다른 공급선 찾기에 혈안이 된 가운데, 전쟁 형국이 빨리 안정을 찾길 바라고 있다. 스테디셀러 제품 공급선을 바꾸는 문제는 손바닥 뒤집듯 결정하기 어렵다. 특히 가공 식품이 아닌 농산물 같은 경우 같은 품종이라도 개체(클론)와 지역에 따라 맛이나 향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항상 일정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식음료 기업에 공급선 교체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자몽을 두루 사용하는 국내 주요 식음료 기업 관계자들 역시 이 점을 감안해 일제히 ‘현재 선적한 물량과 보유한 재고가 떨어질 때까지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시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몽 공급량이 수요에 못 미치는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음료기업 한 관계자는 “유통기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원액 같은 경우 최소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재고 물량을 확보해 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정 시점이 넘어가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공급이 안정적인 미국산을 사용하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 멕시코 같은 다른 자몽 생산국에서 물량을 조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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