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풍요로운 세상을 선물한 보테로

관리자 2023. 10.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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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년)가 9월에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토실토실한 인형처럼 그려진 '모나리자'(1978년)는 루브르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작을 보테로가 자신의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보테로가 태어난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1990년대까지는 마약과 범죄가 횡행하는 위험한 도시로 악명 높았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있는 이 미술관은 보테로미술관으로 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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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모나리자’, 1978년, 183x166㎝, 보테로미술관, 보고타. publicdelivery.org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1932∼2023년)가 9월에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부고는 귀엽고 장난스러운 그의 작품과 함께 실렸다. 사람은 물론이고 개와 고양이도 마치 풍선이 부푼 듯 빵빵하고 유머 넘치는 장면 속 주인공들은 죽음이라는 엄숙한 순간과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보테로는 틈만 나면 미술관에 가는 사람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머물던 시절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프라도미술관에 출근했고, 프랑스 파리에 살 적에는 눈만 뜨면 루브르박물관에 갔다. 토실토실한 인형처럼 그려진 ‘모나리자’(1978년)는 루브르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원작을 보테로가 자신의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커다랗고 살집 좋은 얼굴에 눈·코·입은 조그맣고, 듬직한 몸집에 비해 손은 앙증맞다.

전세계 많은 이들이 다빈치의 온화한 모나리자 못지않게 보테로가 패러디한 오동통한 모나리자도 사랑한다. 보테로가 제시하는 세상에는 배고픔도 고뇌도 두려움도 없다. 굳이 그런 현실적인 고통을 미술에까지 끌어들여 후손에게 되뇌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보테로가 태어난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1990년대까지는 마약과 범죄가 횡행하는 위험한 도시로 악명 높았다. 1995년에는 메데인의 산안토니오 광장에서 폭발물이 터졌는데, 하필 테러리스트가 폭탄과 다이너마이트 더미를 설치한 곳이 보테로가 만든 공공조각품 ‘새’의 받침대였다. 조각품은 물론 훼손됐고, 더 안타까운 일은 사상자가 220명 이상 발생했다는 것이다. 다시 주물을 뜬 ‘새’를 같은 자리에 놓으면서 보테로는 폭발로 부서진 원래 것을 치우지 않고 옆에 두게 했다. 망가진 조각품을 볼 때마다 후손들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다짐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보테로는 자신의 인생이 미술관에서 풍요로워졌듯, 다른 사람들도 장벽 없이 미술관에 들어와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순화하기를 바랐다. 인간은 예술이라는 꿈을 꾸기에 험난한 현실을 견뎌낼 뿐 아니라 실제로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었던 그는 평생 모아왔던 방대한 양의 명작 및 본인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있는 이 미술관은 보테로미술관으로 불리게 됐다.

보테로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로 예술의 힘 덕분인지, 오늘날 콜롬비아는 환한 햇빛 아래 자유롭게 웃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가득해졌다. 메데인을 치안이 불안한 뒷골목으로 떠올리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고인이 된 보테로는 고향 메데인이 유쾌한 미술의 도시로 거듭난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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