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드라마로 코딩 배워요" 스타 창업자 이비호 유리프트 대표의 새로운 도전
최초로 스마트폰에서 배울 수 있는 드라마 형태의 코딩 교육 선보여
2021년 신생기업(스타트업) 유리프트를 창업한 이비호(44) 대표는 스타트업계에서 유명한 스타 창업자로 꼽힌다. 그는 메가스터디와 더불어 국내 입시교육 대표업체 이투스를 창업해 '국민 강사' 설민석을 발굴했으며 학생들 사이에 유명한 '누드 교과서'를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원어민 발음을 배울 수 있는 영어 회화 교육으로 인기를 끈 '스피킹맥스'로 수백억 원 매출을 올린 스터디맥스도 창업했다.
두 번의 성공적 창업을 한 그가 세 번째 도전한 분야는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소프트웨어 개발, 즉 코딩 교육이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연쇄 창업 도전기를 들어봤다.
전교 150등에서 전국 100등이 되다
"원래 공부를 못했어요." 교육 분야에서만 세 번 창업한 이 대표는 뜻밖의 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부산고 1학년 때 전교 150등이었어요. 어느 날 반장 선출을 위해 1등부터 10등까지 남으라는 선생님의 말을 번호로 잘못 듣고 5번이었던 저도 남았어요.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며 빨리 나가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죠. 어린 마음에 공부 못하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작심한 그는 참고서를 모두 사서 독파했다. "당시 동네에 변변한 학원이 없어 무식한 방법을 택했죠."
그러면서 독특한 공부 요령을 터득했다. "여러 교재를 한 권으로 만드는 방법이에요. 가장 마음에 드는 주교재를 정한 뒤 그 책에 없으나 다른 책에 있는 내용을 일일이 메모지에 적어 붙였어요. 그러면 모든 교재 내용을 망라한 참고서가 되죠."
이후 성적이 전국 100등으로 수직 상승하며 199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정작 대학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교재가 재미없었어요. 교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죠."
아이디어가 빛난 밀리언셀러 '누드 교과서'
마침 벤처열풍이 뜨겁던 시절이어서 학업보다 창업에 관심을 갖고 서울대 벤처창업 동아리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경영학과 의류학을 복수 전공한 부인 심여린(42) 유리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됐고 결혼까지 했다. "좋은 교재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이 컸던 만큼 대학 3학년 때인 2000년 동아리 친구 3명과 이투스를 창업했어요. 좋은 교재를 만들어 온라인 교육을 하고 싶었죠."
이투스가 내놓은 사회와 과학 대입 참고서 '누드 교과서'는 연간 1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성공했다. "당시 누드 김밥이 유행해 흐름을 따라가면서 어려운 공부를 쉽게 벗겨 보자는 뜻을 담아 참고서 이름을 직접 지었죠. 참고서를 팔아 100억 원 매출을 올렸고 20억 원 영업이익이 났어요."
누드 교과서의 성공 비결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였다. "그때 인기있던 PC통신 구어체로 참고서를 만들었어요. 당연히 학생들이 좋아했죠. 누드 교과서를 500만 부 이상 팔아 그 돈으로 서울 서초동 건물을 사서 신림동 지하에 있던 사무실을 옮겼죠."
암행어사처럼 학원 돌며 설민석 발굴
누드 교과서의 성공으로 입시 과목을 강의하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유망 강사를 발굴하려고 학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몰래 강의를 들었다. 그때 훗날 스타 강사가 된 설민석을 찾아냈다. "미래한국인학원이라는 작은 학원에서 통합사회 과목을 하던 설씨를 발견했어요. 무명이었던 그때부터 연기하듯 강의하는 것을 보고 스타 강사의 가능성을 발견했죠."
마침 설씨도 인터넷 강의에 관심이 많아 의기투합했다. "설씨가 합류하고 나서 온라인 강의도 크게 성공했어요."
그렇게 이 대표는 6년간 이투스를 운영하고 2006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했다. 매각 이유는 비용 상승이었다. "메가스터디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스타 강사 확보에 비용이 많이 들어갔어요. 콘텐츠 개발이 좋아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강사 경쟁으로 변질되자 피로를 느꼈죠. 대기업 자본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매각해 SK커뮤니케이션즈 교육사업부로 흡수됐어요."
대기업 직원이 된 이 대표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2년간 근무하며 전화영어 학습의 대명사 '스피쿠스' 서비스를 만들었다. "필리핀 현지인들과 통화하며 영어를 배우는 서비스였죠. 돈을 잘 벌었어요."
원어민 영어교육으로 두 번째 성공
2008년 유학을 준비하다가 스터디맥스를 두 번째로 창업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를 나와 미국 경영대학원 유학을 가려고 영어 학원을 열심히 다녔어요. 그런데 학교를 알아보려고 미국에 가보니 성우처럼 또박또박 가르친 학원 영어가 현지 영어와 너무 달랐어요. 그때부터 유학 대신 창업을 하고 영어 교육 콘텐츠 사업을 준비했어요."
유튜브가 없던 시절 그는 미국인들을 직접 만나 회화 동영상을 찍어 영어를 가르치는 '스피킹맥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2, 3개월 간격으로 미국에 가서 현지인 2,900명을 만나 잘 쓰는 표현 위주의 동영상 교재를 만들었어요."
색다른 방법의 교육과 교재에 힘입어 스피킹맥스도 성공했다. "첫해 60억 원 매출을 기록하며 흑자가 났어요. 2019년 누적 매출이 800억 원까지 올라갔죠."
상장을 준비하던 이 대표는 2019년 위버스마인드의 제안을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스타트업은 시작과 끝이 있어요. 위버스마인드는 유통과 영업에 강한 회사여서 상장보다 매각이 나을 수 있죠."
"드라마로 배우자" 최초 휴대폰 코딩 교육 개발
매각 후 1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그는 1년여 휴식을 취하고 코딩을 가르치는 세 번째 창업을 했다. 이때 첫눈과 크래프톤 등을 창업한 장병규 본엔젤스 파트너, 스마일게이트 등에서 총 34억 원을 투자받았다. "돈은 충분했지만 신뢰를 높일 수 있어 본엔젤스 등에서 투자받았어요. 누가 투자했는지 중요하거든요."
공부 요령에 일가견 있는 이 대표가 7월부터 시작한 코딩 교육 사업 '코딩밸리'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재미와 휴대기기(모바일)다. 그동안 코딩 교육은 프로그래밍 내용이 길고 복잡해 스마트폰에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컴퓨터 위주로 진행됐다. 그는 이 점을 노렸다. "코딩은 정작 사람들이 많이 쓰는 스마트폰으로 배우기 힘들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택한 수단이 드라마다. 교육 내용을 5분 분량의 웹드라마로 제작했다. 영상도 스마트폰 화면에 맞춰 세로로 찍었다. "일상 생활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를 보며 재미있게 코딩을 배워요. 극 중 연인이 100일 기념일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파이선'으로 만드는 식이죠. 궁금하게 끝나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K드라마 문법을 적용했어요."
촬영 스튜디오까지 만들어 교재 역할을 하는 드라마를 모두 내부에서 제작한다. "교육 내용은 직접 구성하고 촬영 등은 전문 제작사에서 담당해요. 전문 배우는 코딩 경험이나 이과 출신 등을 감안해 선택하죠."
이렇게 매달 4편씩 만든 영상이 HTML부터 파이선까지 12개 과정별로 27편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영상 50편을 만들 계획입니다."
코딩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실습이다. 이 대표는 드라마가 끝나면 실습 코너가 나타나도록 구성했다. 앱으로 강의를 듣고 스마트폰으로 실습까지 하는 코딩 교육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영상이 끝나면 코딩 실습 프로그램이 떠요. 초보자는 파이선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하는 것도 어려운데 코딩밸리는 설치하지 않고 앱으로 바로 실습할 수 있죠."
언뜻 들으면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기술 장벽이 높다. 이 대표를 포함해 전체 직원 25명 모두 코딩을 하는 이 업체는 카카오 출신 유명 개발자들이 합류해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을 개발했다.
코딩 교육도 수출...연말 유료화로 해외 진출
이 서비스는 4개월 과정에 9만9,000원을 받는 유료로 제공한다. "앞으로 직장인이나 전문가를 위한 심화 과정 등을 추가할 예정이죠."
더불어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미 입소문을 듣고 이스트소프트 등에서 B2B 계약을 맺었다. "기업 및 공공기관, 학교를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외국인을 겨냥해 해외 수출도 준비 중이다. "올해 말 기존 영상에 일어로 녹음한 일어판을 먼저 선보이고 내년에 미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코딩 교육 드라마를 만들어 영미권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드라마 방식의 강의는 일본, 미국에도 아직 없어요."
이 대표는 향후 매출을 확대해 상장까지 추진할 생각이다. "내년 50억 원, 후년 100억 원 매출이 목표입니다. 이번에는 증시 상장까지 가고 싶어요."
세 번 창업한 이 대표는 예비 창업가들을 위해 "섣불리 창업하지 마라"는 조언을 했다. "창업을 하려면 본인의 능력을 파악해 창업 전 해당 분야에서 최고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학생 시절 최초 창업을 했지만 그때 이미 입시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했어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쉽게 창업하면 안 됩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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