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경쟁 완화 위한 5등급제... 변별력 약화에 특목·자사고 쏠림 우려도

손현성 2023. 10. 1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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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
내신 변별력 저하 보완 명분 대학별고사 강화 관측도
상대평가 병기에 '점수 잘 받는 과목 쏠림' 재연 우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교육부가 10일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에서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병행해 내신 성적을 5등급으로 산출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교육계 반응이 분분하다. 정부는 현행 내신 9등급제를 5등급제로 전환하면 내신 경쟁이 완화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내신 변별력 저하로 상위권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 등을 강화해 입시 부담이 되레 가중될 수 있고, 내신 부담 완화가 학생들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목고 쏠림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한편에선 상대평가 병행으로 성적받기 좋은 과목에 학생들이 몰려 고교학점제 취지가 무색해질 거란 지적도 나온다.

시안에 따르면, 2025학년도부터 고 1~3학년생은 모든 과목에서 5등급 절대평가와 함께 상대평가 5등급이 병기된 내신 성적을 받는다. 2005년 도입된 9등급제가 20년 만에 개편되는 것이다. 등급 수가 줄어들면서, 현행 9등급제에서 상위 4%로 제한된 1등급이 10%로 확대되고, 2등급도 상위 11%에서 34%까지로 늘어난다. 현행 4등급(상위 24%)이 2등급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취지를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정이고, 내신 경쟁을 완화해 사교육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9등급제로 학생들을 지나친 경쟁으로 내모는 내신 체계는 우리나라밖에 없으며 5등급제가 전 세계적 흐름이라고도 부연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내신 변별력 약화가 불가피하고, 이것이 학생 부담 완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많다. 상위권 대학들이 떨어진 내신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최저 등급 강화, 까다로운 지문 제시형 심층 면접 및 논술 등 대학별 고사를 강화할 것으로 관측돼서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학생부 교과전형으로는 변별이 어려워 수능 최저학력 기준 등 다른 수단으로 당락이 가려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 학생보다는 서울 강남권 학생에게 유리한 대입 전형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입시학원조차 내신 상위 등급 확보를 위한 사교육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중 2·3 때부터 고1 내신 선행학습이 기존 국어와 수학 등 주요 과목을 넘어 전 과목으로 확대될 것이란 얘기다.

1등급에 상위 10%까지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자사고와 특목고 등 대학 진학 성과가 좋은 고등학교로 학생 쏠림 현상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내신 부담에 특목고나 자사고, 일반 명문고 진학을 꺼렸던 학생들이 선택을 달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도 "내신이 떨어져도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고 보고 좋은 고교에 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부는 전임 정부 때인 2021년 2월 발표된 고1 공통과목 상대평가와 고2·3 선택과목 절대평가 도입 방안과 비교하면 사교육 부담이 훨씬 줄었다는 입장이지만, 교육현장의 우려는 여전한 셈이다.

내신 전면 절대평가 대신 상대평가가 병행되면서 고교학점제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진로와 적성에 따른 다양한 선택과목 이수가 목적이지만, 상대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수강생이 많은 과목으로 쏠리거나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듣는 과목을 회피하는 현상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시안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해소하려 수능을 공통과목으로만 치르는 안을 내놨는데, 비슷한 문제가 내신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취지대로 학생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이수가 대입과 연계되려면 고교학점제 내신 성적을 대학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상대평가 병기가 필요하다"며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어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도록 현장 의견을 반영해 계속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내신 등급 범위가 넓어진 만큼 보다 정교한 평가 방법 마련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있다. 등급 차가 학생 내신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한층 커진 만큼 불공정성 시비가 확대될 수 있어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실제 점수 차는 미미한데 대입에서는 1·2등급으로 격차가 벌어질 경우 어떻게 합리적인 평가를 할지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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