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안좋은 노벨평화상 징크스… 이·팔 평화협정 30년만에 파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전면전으로 맞붙은 올해는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 30주년이다. 이 협정의 골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돕고, 팔레스타인은 무장투쟁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협정에 서명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은 199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전쟁 발발로 오슬로 협정이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노벨 평화상 징크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하는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의 꽃’으로 불리지만 수상 후 관련 지역 상황이 악화되고, 수상자의 삶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스라엘 라빈 총리는 노벨상 수상 이듬해인 1995년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됐다.
‘아랍의 봄’(아랍권 민주화 시위)으로 혼란을 겪은 튀니지의 민주화 정착에 앞장선 공로로 범시민사회 조직 ‘국민 4자 대화 기구’가 받은 2015년 노벨 평화상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튀니지에선 2019년 취임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가 반복되면서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랍의 봄’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기대감이 커졌던 리비아·시리아·예멘 등은 모조리 내전 및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다.
2014년 노벨 평화상은 하굣길에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에게 총격을 당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 여성 인권의 상징이 된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역대 최연소(당시 17세)로 받았다. 하지만 2020년 탈레반은 세력을 키워 아프간을 재장악했고 여성 탄압도 돌아왔다. 국제사회는 사실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임기 1년 차였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수상자로 깜짝 선정했던 2009년 노벨 평화상 또한 ‘허망해진 노벨상’으로 꼽힌다. 수상 이유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비전과 유엔 등 국제기구와 다자외교를 중시하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 위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과학자연맹에 따르면 세계 핵탄두는 2017년 9282기로 바닥을 친 뒤 다시 늘어나 올해는 9576기를 기록하고 있다.
수상자의 향후 행적이 논란에 휩싸인 사례도 빈번하다. 빈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 대출 기관 그라민 은행을 이끌어 주목받으며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는 정부와 갈등을 겪으며 2011년 은행에서 해임된 데 이어 최근에는 자금 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공로로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전 미얀마 국가고문은 군부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탄압을 묵인했다는 이유로 ‘노벨상 취소’ 요구가 터져 나올 정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2022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수감돼 현재 총 징역 26년을 선고받았다.
2020년 노벨 평화상은 인접국 에리트레아와 오랜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아비 아머드 달리 에티오피아 총리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후 자국 북부 티그라이의 반정부 세력에 대한 대규모 소탕 작전을 주도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학문적 업적을 평가해 주는 다른 노벨상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당시의 정치적 고려와 여론에 따라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끗발’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노벨 평화상 후보는 누구나 추천할 수 있어 난립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 후보는 351명으로, 2016년 376명 이후 역대 둘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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