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이스라엘판 햇볕 정책’ 따르는 척...뒤에선 기습·납치 훈련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이스라엘의 막강 정보력과 군사 장비를 무너뜨린 하마스의 전략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10일(현지 시각) 로이터와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경계의 취약점을 살피기 위한 정보 수집에 나서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등 마치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한 기만전술을 펼치며 이스라엘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유일한 관문인 에레즈 검문소에서 일어난 일은 하마스의 전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곳은 최첨단 카메라, 동작 인식 스캐너, 군용(軍用) 통신 시설 등 디지털 장비가 촘촘히 설치돼 있는 데다 이곳을 지나려면 미로 같은 통로를 통과해야 돼 ‘호랑이 덫’이라고 불려 왔다.
하마스는 공격의 시작과 함께 에레즈 검문소부터 무너뜨렸다. 이스라엘군의 통신부터 무력화하려는 작전이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대전차 미사일로 이스라엘이 수십억 달러를 들여 구축해놓은 첨단 통신 장비가 파괴되면서, 이스라엘군의 연락 체계가 와해돼 소통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하마스가 이처럼 기습적인 공격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엔 수개월에 걸친 사전 준비가 있었다. 외신들은 하마스가 국경의 관문이 어디인지를 비롯해 이스라엘군의 순찰 패턴을 분석해 철책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특히 이스라엘의 감시망이 가자지구 안쪽으로만 향해 있어서 피해는 더욱 컸다고 분석했다. 하마스 전투병이 패러글라이더 등을 동원해 가자지구 장벽을 넘어서자 감시와 요격 수단은 약화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방어를 믿던 장벽 인근 민가는 하마스에 의해 유린됐다. 하마스는 민간인 사살과 납치라는 공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습도 철저히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주민들의 마을을 모의로 꾸미고 집집마다 무장 대원이 습격하는 연습까지 했다. 군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탐지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동선까지도 미리 확인했다고 한다.
치밀한 기만전술에 넘어간 이스라엘의 오판도 하마스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노동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면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전제로 가자지구 임금의 10배에 달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 허가증을 2021년 이후 수천 장 발급해왔다. 하마스는 이런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관심사인 것처럼 속였다. 이스라엘의 한 보안 소식통은 로이터에 “하마스 지도부는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 단체 이슬라믹 지하드가 지난 2년에 걸쳐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을 때도 참전하지 않아 비판을 받으면서도 군사 작전을 자제했다”며 “하마스가 새로운 전쟁이 아닌 경제적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한 연막작전이었다”고 분석했다.
수개월에 이르는 준비를 하면서 보안엔 철두철미했다. 레바논 일간 로리앙르주르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 등과 사전에 논의하긴 했지만 정확한 공격 시점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마스의 (군인이 아닌) 정치 지도자들도 공격 시점은 알지 못했다. 모의 이스라엘 민가 공격을 훈련했던 대원들은 이들이 어디를 공격하게 될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주요 거점에 대한 미사일 발사와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한 공중 침투, 장벽을 부수고 들어온 오토바이 돌격이 동시에 이뤄지며 이스라엘군을 크게 당황시켰다. 가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군대 중 하나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제 모습을 찾았지만, 그 몇 시간은 하마스가 학살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하마스가 향후 진행될 이스라엘의 대규모 소탕 작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하마스 고위급 지도자인 살레 알아루리는 CNN에 “우리는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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