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에 포위됐다 생존… 다신 한국 안 온다 했었죠”
“73년 전 (6·25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돌아올 때 한국의 곳곳에서 죽음의 악취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사방에 버려진, 불타버린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지요. 그랬던 한국이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는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 뉴욕 할렘의 자택에서 만난 찰스 랭글(93) 전 연방 하원 의원은 “(6·25 전쟁 중 미국 귀환 당시에) 절대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랭글 전 의원(민주당)은 존 코니어스, 하워드 코블, 샘 존슨 전 의원과 함께 미국 의회에서 6·25 전쟁의 ‘4대 참전 용사’로 꼽힌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방문해 연설했을 당시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을 할 때 랭글 전 의원 등을 호명하며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것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 바 있다. 4대 참전 용사 중에서 현재 생존 인물은 랭글뿐이다.
1930년생인 랭글은 20세였던 6·25 참전 당시 남한과 북한도 구별하지 못한 채 한국에 발을 디뎠다. 당시 ‘정말 전쟁터에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하며 얼떨떨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6·25 전쟁 때 겪은 일들을 잊지 못한다. “1950년 11월 30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경험한 날입니다. 나와 내 동료들이 속했던 2사단은 중공군에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그에게 ‘아직도 전쟁의 공포가 남아 있느냐’고 묻자 “73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괜찮다”면서 “그날 이후 내 인생에서 나쁜 날은 없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지킨 그는 6·25 전쟁에 참여한 공로로 미 보훈부의 지원을 받아 로스쿨에 진학했다. 이후 1971년부터 2016년까지 46년간 뉴욕 할렘을 지역구로 하원 의원(23선)을 하면서 2009년 ‘한국전 참전 용사 인정 법안’ ‘한국전 납북자 송환 결의안’ ‘6·25 전쟁 추모의 벽 건립안’ ‘재미 한인 이산가족 허용 촉구 결의안’ 등 한국과 관련한 법안의 의회 통과를 주도했다.
그는 올해가 한미 동맹 7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랭글은 양국의 강력한 동맹이 유지되고 있는 배경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남한을 침공한 북한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낸 친구이자 동맹국”이라면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지역의 경제·군사적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더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함께 뭉쳐야 한다”면서 “자유와 평화를 이룬 양국의 위대한 업적이 계속되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
랭글은 현역 의원 시절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 그에게 ‘당신이 한국과 관련해 갖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묻자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이 바로 살아있는 상징인데 더 이상 어떤 것이 필요하겠느냐”고 말했다. 미 의회의 대표적 지한파 의원인 그는 한국에 지인도 많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그는 2013년 8월 한미 동맹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랭글은 “박 전 대통령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93세의 고령인 랭글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내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돌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 랭글은 “제가 다시 한국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라면서 “우리의 희생에 한국 사람들보다 많은 감사를 표한 민족은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에 그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다소 힘겹게 일어서며 “와줘서 고맙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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