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밀 듯 밀려오는 이민자에… ‘진보 도시’ 뉴욕·시카고도 분열
민주 對 공화 힘겨루기와 다른 양상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최근 몰려드는 이민자 문제로 분열하고 있다. 인권과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시카고와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 민주당 소속 시장이 이끄는 도시들도 이민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자 이민자 대우 문제를 놓고 내홍 조짐이 일고 있다. 불법 이민 단속을 강조하는 공화당과 관대한 이민 정책을 펼치자는 민주당 사이의 힘겨루기 구도였던 미국 사회의 이민자 문제가 한층 더 복잡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는 최근 이민자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겨울철 베이스 캠프’를 건설하기로 하고 사설 업체와 2930만달러(약 396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이미 24곳의 임시 쉼터를 조성한 데 이어 이민자 수용 시설을 확충하기로 하자, 일부 시민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이민자들을 위해 왜 시카고 자금을 낭비해야 하는 거냐”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년간 12만명의 이민자가 몰려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뉴욕은 이민자들을 받아주는 시(市) 정책의 뿌리가 되는 ‘쉼터 권리(right to shelter) 명령’을 일시적으로 중단해 달라고 최근 법원에 요청했다. 1981년 생긴 이 조례는 노숙자·난민이 요구할 경우 시가 보호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민자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할 상황에 이르자 ‘백기’를 든 것이다. 이에 진보 성향의 뉴욕의 법률구조협회와 노숙자연합은 “42년 전 우리가 거리의 노숙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결정한 내용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 시각) “이민자 문제가 뉴요커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지난 4~7일 멕시코·에콰도르·콜롬비아 등 중남미 3국을 방문해 ‘이민을 오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미 북동부 매사추세츠주도 1983년 생긴 비슷한 법률을 근거로 약 6800가구의 이민자 가족들이 모텔 등에 머물고 있다. 이민자들이 급증하자 모라 힐리 매사추세츠주 주지사는 지난 8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백악관은 최근 실태 파악을 위해 국토안보부 특별팀을 보냈다.
멕시코 접경 지역인 남부 텍사스주 등 공화당 색채가 강한 지역들이 뉴욕·LA 등지로 이민자를 실어나르고 있다는 점도 분열의 한 축이다. 일부 민주당 소속 시장들은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텃밭 지역들의 혼란을 조장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캐런 배스 LA 시장은 지난달 14일 이 매체 주최 행사에서 이민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6월부터 텍사스주 등에서 이민자들을 태운 버스들이 몰려들자 우려를 표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 국토안보부는 텍사스주 리오그란데 밸리에 국경 장벽을 추가로 건설하기 위해 환경보호 요건들을 담은 26개 연방법 적용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히는 국경 장벽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방침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민 정책을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진보 진영에선 “트럼프 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내가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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