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35] 세련된 거짓, 촌스러운 진실
런던에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겠다며 영국재정청에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신청인은 국내 및 해외 금융기관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인상적인 국내의 저명한 이름들을 줄지어 세웠더군요. 정무차관 오브리 롱리그와 우리의 예비 장관께서도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원에서 늘 밑바닥을 훑으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합류했습니다. 법률 고문으로는 유명한 팝햄 박사가 있습니다. 드살리스 전 해군 대령은 홍보 공세의 선봉에 나섰습니다.
-존 르 카레 ‘우리들의 반역자’ 중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한·중전 당시, 국내 포털 사이트의 중국 응원 클릭 수가 2300만건이 넘었다. 평소엔 관심 없어도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자국팀을 응원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늦은 시간, 국민 절반이 다른 나라를 응원했을 리 없다. 실제로 해외 인터넷 주소를 통해 클릭이 2000만건 이상 유입됐다. 평소 여론도 ‘드루킹’처럼 조작됐으리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높다.
잊히고 싶다던 전 정권 수장의 자기 자랑은 끝이 없다.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까지 끌어와 9·19 군사 합의를 자화자찬, ‘파탄 난 남북 관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녹취록 논란이 있던 16년 전처럼 2018년에도 NLL(북방 한계선)을 부정, 북한이 우리 해역을 침범한 ‘경비 계선’을 고집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용인했다면 평화로 위장한 국민 기망, 영토 농간을 넘은 매국 행위다.
마피아 조직은 은행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비리 정황을 모두 아는 부하와 가족을 몰살한다. 수십 년간 자본 세탁을 책임져 온 디마는 다음 살해 대상이 자신인 걸 알고 영국 정보국과 접촉한다. 거액 뇌물을 받고 마피아 뒤를 봐주는 정치 거물들의 명단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부패 정치인들은 청소됐을까? 소설은 묻는다. 누가 반역자인가? 마피아의 내부 고발자? ‘피 묻은 돈’에 홀려 나라와 국민을 팔아 자기 배만 불리는 높은 분들?
권력은 거짓과 조작, 상상 못 할 위선과 비밀로 유지된다. 그런데 진위를 가려야 할 법은 누가 만들까? 접속국 표기, 인터넷 실명제를 해도 여론 조작은 가능하다. 권력은 눈부시다. 검은돈은 달콤하고 청렴은 비루하며 거짓은 세련되고 진실은 촌스럽다. 심지어 애국은 진부하고 반역과 매국은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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