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미국이 우려한 두 개의 전쟁 현실화

이하원 논설위원 2023. 10. 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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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 이어 중동 전쟁… 美가 한반도서 눈 돌릴 때 北 도발
‘利敵 9·19′ 합의 전면 폐기하고 日처럼 ‘선제타격’, 평화 지켜야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동지중해로 전진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을 비롯한 항모전단./EPA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가장 경계하던 ‘두 개의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두 개의 주요 전쟁이 동시에 터지는 것을 우려해 왔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 지역과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일제히 전쟁이 발발하면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국력이 욱일승천할 때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 승리하는 군사 계획을 유지해 오다가 2012년 이를 수정했다. 세계 정세가 변화하고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자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미군 슬림화’ 계획과 함께 이를 폐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물밑에서는 자국의 위신과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두 개의 전장(戰場)이 생기는 것을 막아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애쓴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로켓포 5000발을 쏘며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 5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노력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일주일이면 승리할 줄 알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가 망신당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중동 전쟁을 호기(好機)로 생각한다. 전 세계의 관심이 중동에 쏠려 있는 사이에 우크라이나를 몰아붙이려 할 수 있다.

최근의 국제 정세 기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내려놓은 후 더욱 불안해지는 추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다극화된 세계가 생겨나고 있다”며 “이는 균형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긴장과 분열이 고조되고 더 나쁜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정학적 질서가 바뀌는 ‘결정적 순간’으로 분석한 보고서도 나왔다.

세상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다고 보고 빠르게 움직인 나라가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은 적국의 공격이 확인되면 적의 미사일 발사대 등을 먼저 타격하는 선제타격 개념을 도입했다. ‘3대 안보문서’를 모두 개정, 선제타격 개념을 포함하는 반격 능력을 명시했다. 북한의 대남 도발, 중국의 대만 침공, 러시아의 남하(南下)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미 연방 의회도 한반도 관련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4일 미 상원 외교위의 한반도 청문회에서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미트 롬니 의원은 “재래식 무기는 물론 핵무기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핵 보유국(북한) 옆에 있는 한국이 자체 핵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우려된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 산다면 균형이 맞지 않아서 불안해할 것”이라고도 했다. 증인으로 나온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커지는 북한의 위협을 지적하며 한국에 핵무기 재배치를 위한 예비 대화와 유사시 선제타격을 포함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이런 움직임이 시사하듯 최근 북한의 위협과 한반도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두 개의 전쟁 현실화를 계기로 우리가 당장 결행해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입맛에 맞게 만든 9·19 군사 합의의 폐기다. 무엇보다 9·19 합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으로 북한의 도발 정보를 제대로 탐지 못 하게 하는 이적(利敵) 행위였다. 전쟁의 승패는 정보전에서 판가름나는데 눈과 귀를 가리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나. 더욱이 북한은 무인기의 대한민국 영공 침범 등을 통해 합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지 않나. 김정은을 미소 짓게 한 합의 문서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미국과 연대해 확고한 선제 타격 태세를 갖출 때 우리가 누리는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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