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44] 진화하는 예금보험 제도
그 부부는 위험하고 무모했다.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엄청난 자금을 굴리는 사채시장 큰손인 듯 행세했지만 속임수였다. 그들은 채무자에게 받은 약속어음을 그냥 보관하지 않았다. 채무자 몰래 팔아서 현금을 채웠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채시장이 교란에 빠지고 급기야 제도권 금융시장까지 흔들렸다. 1982년 5월 결국 꼬리가 잡혔다. 장영자·이철희 어음 사기 사건이다.
사건 직후 사채시장 폐지 여론이 들끓었다. 전두환 정부는 음성 금융거래를 없앤다면서 금융실명제를 천명했다. 하지만 5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금융실명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2년 반 뒤 유보되었다. 금융실명제는 사기 사건 때부터 11년이 흐른 뒤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실현되었다.
그 후로는 예금 실소유주와 명의자가 다른 ‘대포 통장’이 불법 금융거래의 상징이 되었다. 명의 신탁 예금도 마찬가지다. 미리 당사자에게 양해를 얻었더라도 다른 사람 이름을 빌린 예금은 항상 의혹의 눈길을 받는다. 국세청은 그런 예금을 특별히 주목한다.
그런데 금융 혁신이 진행되면서 실소유주와 명의자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예금이 등장했다. 퇴직연금은 거래 금융기관을 통해 여러 갈래로 투자하는데, 일부는 제3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맡긴다. 그 예금 실소유주는 근로자이지만, 명의자는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이다.
퇴직연금은 노후와 관련되므로 잘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퇴직연금과 관련한 예금은 번거롭더라도 실소유주를 일일이 파악한 뒤 다른 예금과 구분해서 보호한다. 정부가 앞으로는 성격이 비슷한 연금신탁과 연금보험까지 보호하기로 했다. 외국에서는 청년 세대의 결혼 자금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 자금처럼 생애 주기별로 긴요한 예금을 따로 보호한다. 대공황 때 등장한 예금보험 제도가 이제는 금융 안정을 넘어 사회보장과 복지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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