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사람과 사람 사이

주철희 한국해양콘텐츠 앤크루즈㈜ 2023. 10.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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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한국해양콘텐츠 앤크루즈㈜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맺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관계에는 부모 형제 친구 연인과 같은 사적인 관계와 사회적 모임이나 일로 만나는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마다 사랑 또는 우정 등의 감정과 친밀감이 있으며 그 감정의 강도에 따른 단계가 있고 그 단계에 따른 거리가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부모님이 맺어주는 집안의 배우자와 가문끼리 혼인을 하고, 살아가며 사랑하고 정을 붙여 나가는 시대가 있었다. 반면 요즈음 젊은 남녀들은 사귀기 전에 호감이 생겨 알아 가는 단계로 썸씽(something)의 줄임말로 ‘썸’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여 ‘썸타다’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귀다의 ‘사’를 숫자 4로 대의하여 그 전 단계로 삼(3)귀다의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요즈음에 이런 단계를 가지며 관계의 신중성을 기하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리에는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있으며 물리적 거리는 공간적 거리 개념이며 심리적 거리는 말 그대로 친밀도에 따른 정신적 유대관계의 거리이다. 에드워드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 사회적 관계에 따른 적정한 물리적 거리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첫 번째는 공공적 거리(3.6m~7.5m)로 관계가 없는 사람끼리 유지하는 거리이다. 길을 걸을 때나 공공장소의 강연 또는 모임에서 모르는 사람과는 3m 이상 거리를 두게 되며 다른 사람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면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거리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거리(1.2m~3.6m)로 어떤 관계를 느끼게 되거나 같은 그룹에 속해 있을 때의 거리이며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합한 거리이다. 모르는 사람이 이 거리 이내로 들어오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사적인 거리(46㎝~1.2m)로 친구나 가족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거리이며 따라서 모르는 사람과 상담할 때는 1.2m 이상 떨어져야 한다. 네 번째는 친밀한 거리(46㎝ 미만)인데 가족 애인 친구 등 친한 관계에서 유지하는 거리로 서로 포옹하거나 만지거나 속삭일 수 있는 거리이다.

물리적 거리는 건축 설계 시에 공간적 거리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대의 도시적이고 복잡한 일상생활에 있어서 타인과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 취해야 할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양식도 있다. 배우 강동원의 2004년 출연작인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여주인공 이청아의 우산에 뛰어들어 함께 우산을 쓰는 장면이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면은 지켜야 할 물리적 거리를 위반한 상황이 꽃미남 외모 덕분에 극복된 예외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강동원의 얼굴을 본 여주인공이 호감을 느껴 심리적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물리적 거리를 지키지 않고 모르는 사람의 우산에 뛰어들었다가는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으니 삼가야 한다.

심리적 거리는 사람의 존재 마음 관계에서 친밀감에 따른 정신적 거리, 또는 내면적 거리를 말한다. 다른 사람과 심리적 거리를 적절히 두고 자신의 욕구와 영역을 지켜야만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가까운 인간관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부모가 지나치게 자녀를 간섭하고 지배하거나 과보호를 하면 자녀는 낮은 자존감으로 주체적 삶을 살기가 어렵게 된다. 연인들의 경우에는 관계의 거리와 감정의 강도를 밀고 당기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달콤하고 행복한 심리적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강동원에게 이청아가 한눈에 반했다 하더라도 처음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심리적 거리를 적절히 밀고 당기는 밀당의 귀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까운 나머지 함부로 대하거나 너무 멀어 무관심하게 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기본으로 그 인간관계에 맞도록 시기와 장소에 따라 거리 조절을 해야겠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모두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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